Page 7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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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에게서도 중용되었으며,스스로는 적음존자(寂音尊者)라 자칭하기도
            하였다.승(僧)법화(法和)등의 무고로 수차 투옥되고 또 환속을 당하기
            도 하였는데,이때 재상(宰相)장상영(張商英),태위(太尉)곽천민(郭天民)
            등의 도움을 받았다.유배지에서 돌아와서는 상서(湘西)의 남대(南臺)에
            명백암(明白庵)을 짓고 저술에만 전념하며 살았다.
               남송(南宋)고종(高宗)건염(建炎)2년(1128)5월에 입적하였으니 세수
            (世壽)58세,승랍 39세였다.저술로는  임간록   이외에  선림승보전(禪
            林寶僧傳)   30권, 고승전(高僧傳)   12권, 냉재야화(冷齋夜話)   10권,


             석문문자선(石門文字禪)  30권, 지증전(智證傳)  10권, 지림(志林)



            10권, 천주금련(天厨禁臠)  1권, 어록게송(語錄偈頌)  1편, 법화합론
            (法華合論) 7권, 능엄존정의(楞嚴尊頂義) 10권, 원각개증의(圓覺皆證


            義)  2권, 금강법원론(金剛法源論)  1권, 역주(易註)  3권, 기신론해의


            (起信論解義) 2권, 감로집(甘露集) 20권 등이 전해지고 있다.
                임간록 은 스님이 37세 되던 철종(哲宗)대관(大觀)원년(1107)사일
            (謝逸:字 無逸,號 溪堂)의 서문(序文)을 얻어 간행한 것으로,그 훌륭
            한 문장은 선적(禪籍)중의 백미(白眉)라 하여 예로부터 총림에서 많이
            애송되었다.
               또한 본문 속의 ‘오가종파(五家宗派)’나 ‘덕산사가어록(德山四家語錄)
            ’등의 기록은 어록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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