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고경 - 2016년 9월호 Vol.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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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까?” 건봉이 주장자로 땅 위에 줄을 하나 주욱~ 긋 에게 가서 이렇게 물으라 했다. “요새 사람(今時人, 금시인)
더니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승려가 같은 질문을 운문문 들도 깨달음에 의지해야 합니까?” 앙산이 답했다. “깨달
언 (雲門文偃)에게 했다. 운문이 말했다. “이 부채가 뛰어올 음이 없지는 않으나 둘째 것 (第二頭, 제이두)에 떨어진다면
라 33천에 올라가서 제석천왕의 코를 비틀고 동해의 잉어 난들 어쩌겠는가?” 승려가 돌아와서 미호에게 이 말을 전
를 두들겨 패니, 빗줄기가 동이의 물을 쏟는 것과 같다.” 했다. 미호는 깊이 수긍했다.
‘박가범 (薄伽梵)’은 산스크리트 ‘Bhagavat(바가바트)’의 음차 자고나면 신제품이 나오고 순식간에 톱스타가 뒤바뀌는
(音借)다. 모든 복덕을 갖추고 있어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한 세태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물(外物)에 마음을 빼앗긴다.
몸에 받는 자, 곧 부처님을 가리킨다. 열반문(涅槃門)이란 깨 누군가가 밉다거나 또는 부럽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면 내 삶
달음의 길을 의미한다. 건봉 선사는 땅 위에 줄을 하나 그어 은 이미 상대에게 종속된 것이다. 심지어 ‘그리움’이라는 아름
거기에 해탈이 있다고 가르쳤다. 진정한 행복은 가늘고 짤막 다운 마음도 본래는 망상이다.
하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없다면, 무심 (無心)이
일심 (一心)이 만법(萬法)이다. 오만 가지 생각의 근원은 한 아니라면, 모든 생각은 ‘둘째 것’이다. “유행에 뒤처지지 말아
생각이다. 운문의 입담은 현란하지만, 건봉이 그은 줄 한 가 야 한다.”는 세간의 채근은, 사실 제풀에 노예가 되라는 저주
닥에서 벌어지는 소동일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부처님 손 다. 그러나 권모술수가 이기는 게 또한 사바세계다. 깨달음은
바닥 위인 세상살이에서, 너무 나대었고 너무 흔들렸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위대하나, 돈으로 바꿀 수 없어서 무
‘Bhagavat’는 박가바(薄伽婆)로도 번역된다. 바꿔봐. 시당한다. 한잔의 비움에 기대어 잠을 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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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칙
미호의 깨달음에 의지해야 하는가?
(米胡悟否, 미호오부)
장웅연 ●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장영섭’이란 본명으로
『길 위의 절』,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불행
경조미호(京兆米胡)가 어느 승려에게 앙산혜적(仰山慧寂) 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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