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6년 9월호 Vol.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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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   글 _ 장웅연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은 서로 방향만 다르다.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기분 혹은 결핍의 감정이다. 스스로 못났다는 생각
                                                                               이,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욕심과 분노를 낳는다. 그
                                                                               리고 욕심에 사로잡히든 분노에 휘둘리든 실상을 제대로 보
         한잔의 비움에 기대어                                                           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러면 괴롭다. 탐진치 삼독. 탐심과 진
                                                                               심의 쳇바퀴 안에선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증오심
         잠을 청한다                                                                이 볼썽사납다고 열등감 속으로 파고드는 건 바람직하지 못

                                                                               하다. 공성 (空性). 마음의 바깥엔 아무 것도 없다는 자각이
                                                                               사람을 제정신으로 이끈다. 그래서 명상도 하고 심호흡도 하

                                                                               는 것이다.
                                                                                 밖으로는 친절 안으로는 만족. 종교가 인간에게 선사할 수
           ●                                                                   있는 행복의 최대치다. 그 이상을 바라지 말라. 밖으로는 실
                     살면서 내게 들어왔던 뺀질이들. 얼굴도 고향도                                 례 안으로는 스트레스다. 누구 말마따나 모든 타인은 지옥이
         각자 다르건만, 내 마음 한쪽을 부숴놓고 간 건 똑같다. 그들                                    다. 친절해야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만족해야 바람나지 않

         은 건방졌고 때로는 잔인했으며 하나같이 입으로 일했다. 탄                                      는다. 가뜩이나 뜨거운 그들이 더욱 열불내지 않도록, 심기를
         탄하고 날카로운 방어기제로 살아가는 것들이 나는 싫었다.                                       거슬려선 안 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내가 다 쓰기에도 너
         나의 성실과 재능은 그들 앞에서 한 마리 미련곰탱이가 되어                                      무 짧으니까.

         무명 (無名)의 뻘밭을 굴렀다.
           그러나 억울하고 기진한 와중에서도 어떤 깨달음을 얻었                                         ●
         는데,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사실 그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제60칙
         것이었다. 증오심의 절반이 열등감이란 걸 알게 되자, 나는 비                                      철마의 암소(鐵磨牸牛, 철마자우)
         로소 편안히 늙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는 재주가 서로

         달랐을 뿐이다. 내가 열매를 취하려 나무에 오를 때, 그들은                                         유철마(劉鐵磨)가 위산(潙山)에 오니, 위산이 일렀다. “늙
         농장주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은 암소가 왔구나.” 철마가 응수했다. “내일 오대산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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