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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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러 가자.” 하며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20여 년도 더 지난 세  1991년 7월에 해인사 총무국장을 살면서 난생처음 휴가를 받
 월만에 보아서인지 들녘에 덩그러니 서 있었던 오층석탑이 이  아서 원주를 보던 법우스님과 더불어 홍도로 가기 위해 목포
 제는 주변이 정리된 정림사지로 잘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 들렀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사방 주변의 정면에는 초등학교가, 옆과 뒤로는 아파트와 민가  홍도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데 선장이 이
 가 들어서 있고 법당 뒤편에는 교회가, 동쪽으로는 박물관 관  곳저곳을 안내하면서 섬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가리키며 ‘마

 리건물이 자리하고 있어서 오층탑의 위세가 옛날만은 못한 듯   리아 봉’이라고 하자 승객들이 흥분되는 듯 웅성거렸습니다. 배
 하였습니다.        에서 내리면서 선장에게 “옛날에는 마리아 봉을 무슨 봉이라

 이어서 서해안으로 방향을 틀어 그렇게 세간의 관심을 집중  고 했느냐?”고 물으니, “관음봉이라고 했시유.” 하고 대답했습
 시켰던 새만금 간척 방조제를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TV 등에  니다. 다음으로 유달산을 둘러보고서 진도의 명량해전이 벌어

 서 화면으로만 차가 달리는 모습의 방조제를 보았기에 4차선  졌던 울돌목을 찾아갔습니다. 옛날 같으면 해남읍을 돌아 들
 의 고속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막상 새만금 방조제  어가는 먼 길이었는데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목포 바다 위 외

 를 달려보니 33.9km의 고속도 길 뿐만 아니라 그 옆으로 그보  곽대교를 지나서 섬과 섬을 이은 다리를 건너가는데 30분도
 다 더 넓은 평균 폭이 290m가 되는 둑길이 형성되어 있어서   못되어 울돌목에 이르니 이곳에도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음

 1991~2011년의 세월이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썰물 때라 우르쿵쿵하며
 이 들었습니다. 새만금 방조제의 육지 쪽은 매립이 거의 끝나  휘돌아드는 센 물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지난 3월에 건설을 마

 있겠지 생각했는데 아직도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있어서 새만  쳤다는 기념관이며 유물관과 유적들이 잘 정리가 되어있어서,
 금 개발계획이 어찌되나 하는 궁금증이 컸습니다.   옛날의 자취도 없는 썰렁함을 달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

 내려오면서 백제불교도래지를 개발해 놓은 나란타 불교 유  니다. 역사를 바르게 정리하고 후손들에게 잘 알리는 일이 얼
 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영암군에서 직접 조성하였다는데 제  마나 중요한가를 마음에 담아 갈 수 있었습니다.

 법 격을 갖추었고 불갑사의 도움도 컸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해  그렇게 2박3일의 여행을 마치고 백련암으로 돌아왔습니다.
 안 여행을 하면서 저녁노을이 질 무렵 목포에 도착하고, D.J께  못가 본 외국여행도 필요하지만 2~30년 동안 천지가 개벽한

 서 목포에 오시면 머물렀다는 신안 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자니,    우리나라의 오늘의 풍광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도 중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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