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8년 5월호 Vol.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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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물건이다. 빈 몸을 받고 태어난 인간이 허기를 다스리며 다. 자기가 집안일을 맡을 테니 형님이 출가하라고. 형은 “너는
죽을 때까지 밥그릇을 놓지 않았기에 법이 전해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 덕에 집에서 편히 살며 어려움을 몰랐는데, 출가
그래서 밥을 담는 그릇이었던 것이 법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 하여 도를 닦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네가 집을 맡
었다. 선가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 “옷과 발우를 아라. 내가 살림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전한다”는 표현을 쓴다. 혜능선사의 발우가 바위에 놓인 채 꿈 이제껏 맡아왔던 집안일을 동생에게 넘기면서 살림하는 요령
쩍 안 했던 것도 그의 법력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 사람의 법력 을 알려주었다. 농사짓는 일, 장사하는 일, 재산 관리하는 법,
도 법력이지만, 발우에는 계율을 정하신 부처님의 노고와 승가 사람 부리는 법… 아침부터 밤까지 해야 할 일들을 다 말해주
전체의 정신이 담겨 있다. 부처님이 정해주신 제도 덕분에 승 었다. 듣고 있던 아나율은 그 자리에서 경영권승계를 포기하겠
가는 하루 한 끼 먹고 발우 하나를 지니는 간편한 식생활방식 다는 결단을 내린다. “집안 살림이 이런 거라면 저는 하루도 해
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출가했다고 해서 먹고사는 문제가 결 낼 수 없습니다. 형님이 집에 계십시오. 제가 출가하겠습니다.”
코 쉽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금수저도 포기할 만큼, 재가의 먹고살기는 힘든 일이다.
한편, 재가의 밥그릇은 복잡하고 치열하다. 밥그릇을 가지고 재가든 출가든 짐승이든, 몸이 있는 한 먹이고 길러야 산다.
갑질하는 사람도, 그 갑질을 당하는 사람도, 똑같이 밥그릇을 몸은, 스님들에게 주어진 발우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꼭 잡는다. 재가의 먹고사니즘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는 몫이다. 이 그릇에 어떤 밥을 담을 것인가.
『오분률』에 전하는 아나율 형제의 이야기가 잘 말해준다. 부처
님이 성도하고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오자 석가족의 아들 중에
부처님을 따라서 출가한 이들이 많았다. 집집마다 출가하는 것
을 본 부처님의 사촌동생 석마남은 고민에 빠진다. 너무 부잣
집 아들이라 큰살림을 놓고 출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 아나율을 불러 의논한다. “다른 집들은 다 출가
하는데 우리 형제만 빠질 수 있느냐, 너와 나 둘 중에 하나는 이인혜
—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 편집위
살림을 맡고 하나는 출가하도록 하자.” 아나율은 선뜻 대답한 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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