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8년 5월호 Vol.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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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애썼을 것이다. 남의 집 문 앞에서 밥을 기다리는 동안 “나의
목숨이 남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인연법을 매일같이 새겼을 것
발우에 담긴 뜻 이다. 더러는 밥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한 끼 허
락된 밥인데 얻지 못하면 난감한 일이다. 밥을 주지 않는 집에
대고 욕을 하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지 말라고 경계하
글│이인혜 신 게송이 『장아함경』에 전한다.
의식주 중에 가장 급한 것이 밥이다. 그 다음이 옷이고, 그
다음이 집이다. 잠은 한 데서 잘 수도 있고, 옷은 대체물을 찾
○●○ 아서 급한 대로 몸을 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먹지 못하면 몸
먹고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문제다. 킬리만 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 한 끼 걸식은 실제로 생사문제
자로의 표범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고, 판다곰도 대나 였다. 따라서 밥을 담는 그릇은 생명의 도구인 셈이다. 다 버리
무 숲에서 종일 잎을 찾아다닌다. 먹어야 사는 것이 생명을 가 고 출가했어도 생존을 위해 최소한 필요한 개인물품이 바로 밥
진 존재의 운명이다. 먹이를 찾아 거의 하루를 소비하는 동물 그릇, 발우인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만큼 부처님이 계율을 정
에 비해, 사람은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먹는 시간을 하 할 당시에 발우를 두고 벌어진 일들이 많다. 발우에 대한 규정
루 세 끼로 줄였다. 그렇게 해서 남는 시간을 유희와 연구개발 을 정하신 과정은 『오분률』에 자세히 전한다.
에 써서 오늘의 문명을 누리게 되었다. 문명 중에 문명이신 부 발우에는 쇠로 만든 것, 소마국에서 나는 것, 흙으로 구워
처님은 먹는 일을 대폭 줄이셨다. 하루 한 끼, 그것도 요리를 만든 것이 있고, 각각에 상중하품이 있었다. 상인들이 파는 것
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빌어서 먹으라 하고 나머지 시간을 온 을 신도들이 사서 승가에 보시하는데 다들 상품을 원했다. 너
전히 도에 매진하도록 승가의 제도를 만드셨다. 무 크거나 작지 않은 것, 모양이 비뚤어지지 않은 것, 깨지지
제자들은 배가 고팠을 것이다.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걸 않을 단단한 것, 손에 잡기에 편한 것을 선호했을 것이다. 재료
어가는 동안 배고픈 몸을 관찰했을 것이다. 부잣집 가난한 집 와 모양이 다양하다 보니 취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직 쓸 만
을 가리지 않고 순서대로 걸식하는 동안 평등심을 유지하려고 한데도 좋은 것으로 바꾸려는 스님들도 있었고, 때 아닌 때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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