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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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이었던 경봉정석(鏡峰靖錫, 1892-1982)의 지도 아래 참선을 체                                       신’임을 자인하기는 창피하니까 으레 ‘전략적 후퇴’나 ‘일상의 작은 지혜’라

             험했다. 처음 해보는 가부좌에 다들 애를 먹었다.                                                        고 표현한다. 병신이 한 명 더 있으면 ‘화합’이라고 쓴다.
             = 고시공부도 힘들지만 마음공부도 힘들다.                                                              선 (禪, dhya-na)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고요한 마음’이겠다. 무심(無心)

                                                                                                이라 해도 좋고 청정심(淸淨心)이라 해도 좋다. 마음을 텅 비우거나 사심
             “스님, 이거 잘 안 되는데요. 그냥 책상다리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을 버리면 도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 대한 험담 한마디면 그 자

             = 그래서 고시공부만 하고 싶구나.                                                                리에서 무너지는 것이 무심이요, 30만원 받을 일에 20만원만 받으면 당장
                                                                                                에 입이 더러워지는 게 청정심이었다. 요즈음엔 ‘내가 병신이 될 수도 있구

             경봉이 말했다. “그래, 병신은 안 되지.”                                                           나!’ 인정하는 마음과 ‘병신이 되어도 괜찮다.’ 포용하는 마음을 원한다.
             =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면, 나가서 해라.                                                             ●

                                                                                                  내일이 오늘을 삼킨다.
             내가 본 책 속의 선사(禪師)들은 징징대는 걸 몹시 싫어한다. 말들은 하                                             여빙귀수(如氷歸水).

           나같이 짧았고 죽을 때가 되면 그냥 죽어버렸다. 그게 너무 부럽다.
             엄살은 어디에서 오는가. 간단하다. 이기심 때문이다. 내 몸을 아끼는 마

           음에 힘든 일도 하기 싫고, 내 몸 편하자고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것이다.
           불쾌하고 답답하지만 그게 사바세계다. 마음이 몸에 묶여 있는 한, 생명

           은 일정하게 사악하고 치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거룩하고 소중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생명의 진정한 본질이다. 우리가 삶을 선택하지 않았듯,

           생존을 향한 본능은 이미 태초부터 정해진 프로그램. 내 삶의 주인은, 미
           안하지만 내가 아니라 삶이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욕을 먹고, 일단 살고는

           봐야하겠으니까 머지않아 적폐가 되는 것이다.
             각자의 몸에 종속된 마음은 각자의 몸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 내 몸이                                                         장웅연

           처먹을 몫이 커진다면 눈을 까뒤집고, 내 몸이 올라갈 수 있다면 벼랑에                                                          집필노동자. 1975년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본명은 ‘장영섭’. 글 써서 먹고 산다. 포교도 한다. 그간 『불교에
           서 뛰어보기도 한다. 물론 마음에게 몸을 다치게 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49(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 『길 위의 절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한국인이
           다. 가부좌는 하기 싫고 책상다리를 하는 선에서 적절히 타협을 본다. ‘병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등 9권의 책을 냈다. 최근작으로 『불교는 왜 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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