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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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느 날 “큰스님이 열반에 드시면 그날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자유
            롭게 백련암을 떠나 제방 선원을 다니며 정진할 생각입니다.”고 대답했습

            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그때부터 자유롭게 되는 줄 알았는데, 막

            상 그날부터 양 어깨에 무게를 모를 무거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무게는 지
            금도 가벼워지지 않고 있어, “내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을
            때때로 합니다.

              큰스님께서 떠나신 뒤의 25년을 되돌아보면 주명덕 사진작가가 먼저 떠

            오릅니다. 큰스님을 촬영해 사진집 『포영집』을 출간해 주셨고, 김호석 화
            백을 소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김 화백은 진영뿐만 아니라 큰스님의 모
            습 수십 점을 그려주셨습니다. 1995년 3월 예술의전당에서 ‘주명덕 사진전

            및 김호석 수묵화전’을 열었습니다. 당시 그 전시회에 경북고 동창생 이효

            신도 왔습니다. 졸업 후 몇십 년 만에 만난 회포를 이야기로 풀고 헤어졌
            는데, 저녁 무렵 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심
            이 있어 조각가 몇 분을 압니다. 몇 분을 추천할 터이니 스님이 선택하십

            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강대철 조각가를 소개받았습니다. 지금 백

            련암 고심원에 앉아있는 존상, 겁외사 마당에 모셔져있는 입立존상, 성철
            스님 기념관에 봉안되어 있는 대리석으로 조각된 큰스님 설법상, 기념관
            석굴안의 1230좌座의 청자불감과 1230위位의 금동불상, 1000위 아미타 토

            조상, 1000위 약사여래 토조상, 1200위 미륵불 토조상, 기념관 입구의 금

            강역사상, 아홉 마리 용조각상 등이 강태철 조각가의 열정이 담긴 작품들
            입니다.
              제일 숙원 사업이었던 큰스님 사리탑 조성은 당시 동국대 황수영 교수

            님, 정영호 교수님, 김동현 문화재연구소장님을 지도 위원으로 모시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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