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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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물론 하고, 하지 않고는 스님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강 화백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숨이 멎는듯 하였습니다. “60여m
가 넘는 땅굴과 조각들을 둘러보며 예술가의 집념이 이런 것인가? 하고
감탄 감탄하면서 내가 힘이 있으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을 텐데 그럴 힘
이 없으니 아쉽고 아쉽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는데, 그런 말씀을 들으니
저로서는 더 없는 기쁜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큰스님의 출가송은 보
기 드문 것입니다. 『경덕전등록』이나 『조당집』 등에도 출가시를 남긴 선사
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당당한 출가의 결심을 밝
힌 뛰어난 출가송이라 칭송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출가송을 생
가에 모셔 기념해야지’ 하고 마음에 담고 살아왔었는데 강 화백의 생각과
일치되었으니 정말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토굴 개착 일을 다 이루고 큰스
님의 출가상과 출가시비를 생가 마당에 세워주십시오.” 승낙을 하고 저
도 가벼운 마음으로 백련암으로 돌아왔습니다.
올 2월 초순에 “스님! 큰스님 동상 진흙 소조작업이 다 끝났으니 한번 다
녀가시지요.” 하는 뜻밖의 강 화백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놀랍고 반
가운 마음에 일엄 스님과 함께 장흥으로 내달려 강 화백님을 뵈오니 자초
지종을 말씀하셨습니다. “토굴 조각 작업 마무리를 잠시 멈추고 큰스님의
출가상을 먼저 이루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동안 서둘러 왔습니다. 큰스님
의 출가상이 끝나야 저도 마음이 안정되고 토굴 작업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안거를 해제하고 9월 초순경에 겁외사 생가
뜰에서 큰스님의 출가상과 출가송 비석 제막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로서 큰스님에 대한 ‘유형有形의 불사佛事’는 거의 끝이 아닐까 싶
습니다. 그러나 큰스님 사상을 연구하는 사업과 사람을 기르는 인재양
성 등은 유형의 대웅전이나 선방 건립 불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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