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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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7호 | 지혜와 빛의 말씀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중도中道
성철 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흔히 중도를 변증법과 같이 말하는데, 헤겔F.Hegel의 변증법에서는 모순의 대립이
시간적 간격을 두고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모순의 대립이 직접
상통합니다. 즉 모든 것이 상대를 떠나서 융합됩니다. 그래서 있는 것이 즉 없는 것,
없는 것이 즉 있는 것, 시是가 즉 비非, 비가 즉 시가 되어 모든 시비, 모든 투쟁, 모든
상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모순과 대립을 떠날 것 같으면 싸움하려야 싸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극락이고, 천당이고, 절대세계絶對世界다 그 말
입니다. 그래서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서 세간상 이대로가 상주불멸이다〔시법주
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이 말입니다.
보통 피상적으로 볼 때 이 세간이라는 것은 전부가 자꾸 났다가 없어지고 났다가
없어지고 하는 것이지만, 그 실상實相 즉 참모습은 상주불멸,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생불멸의 원리는 어디서 꾸어온 것인가? 그것이 아닙니다. 이 우주 전
체 이대로가 본래로 불생불멸입니다. 일체 만법이 불생불멸인 것을 확실히 알고 이것
을 바로 깨치고 이대로만 알아서 나갈 것 같으면, 천당도 극락도 필요 없고 앉은 자리
선 자리 이대로가 절대의 세계입니다.
불교에서는 근본적으로 현실이 절대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눈만 뜨고 보면 사바세
계 그대로가 극락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의 세계를 딴 데 가서 찾으려 하
지 말고 자기 마음의 눈을 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눈만 뜨고 보면 태양이 온 우주
를 비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고 참다운 절대의 세계를 놔두고 “염불하여 극락 간
다” “예수 믿어 천당 간다” 그런 소리 할 필요가 있습니까? 바로 알고 보면 우리 앉은
자리 선 자리 이대로가 절대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경계선은 어디 있느냐 하면 눈을
뜨면 불생불멸 절대의 세계이고, 눈을 뜨지 못하면 생멸의 세계, 상대의 세계여서 캄
캄한 밤중이다 이 말입니다. … (하략) ….
│1981년 1월6일, 방장 대중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