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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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불성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점을 제2장에서 밝혔고, 깨침을 방해하는 번뇌를
제3장에서 철저하게 분석했고,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제4장에서
명확하게 해설했기 때문이다. 제5장부터 제8장까지는 깨달음의 내용을 보다 구체
적으로 적시摘示했고, 제9장부터 제12장까지는 제5장과 제6장의 내용을 보충했
다. 제5장부터 제12장까지는 선문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강종綱宗을 밝힌 것이다.
깨달음과 수행에 대한 그릇된 견해와 수행과정에 생기는 병폐들을 통렬히 공
박한 내용이 제13장·제14장·제15장에 들어있다. 밝고 올바른 지혜의 눈을 얻고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털어낸 수행자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설명이 제16
장·제17장·제18장에 상세하다. ‘선문의 가르침’[종승宗乘]과 ‘진실한 수행’[실참實參]
에 두루 정통한 참 수행자의 모습이 이 세 장章에 들어있다. 부처가 될 종자를
잘 지키고 불법佛法을 선양하라는 내용을 담은 제19장은 단순한 당부가 아니고
제1장에서 제18장에 걸쳐 설명한 내용들을 숙지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불교가
끊임없이 전승되어 꽃필 수 있다는 점을 냉철하게 밝혀 놓은 ‘부촉付屬의 종장終
章’이다.
제1장 ‘견성’에서 제19장 ‘당부의 말’에 이르기까지 말과 문자로 불교가 가야할
길을 설명하고 기술했으나 사실은 말하지 않았고 자구字句의 흔적마저 없다. 말과
글을 뛰어넘는 지혜로 밝혀놓은 ‘수행자의 바른 길’[궤칙軌則]만이 오롯이 있을 뿐
이다. ‘깨달았다는 의식조차 사라진’[몰종적沒蹤跡] 무심과 ‘그림자 없는 큰 나무’[무
영수無影樹]의 향기가 ‘차례’에 가득하다.
1) 낙초자비落草慈悲에서 ‘낙落’은 ‘내려오다’, ‘초草’는 ‘깨닫지 못한 범부의 입장’을 의미한다. 자비심을 내
어 말과 언어의 입장인 ‘제이의문第二義門’에서 가르침을 펴는 것을 말한다. 『운문광진선사광록』 권중卷
中에 “예부터 뛰어난 스승들은 모두 자비심 때문에 범부를 위해 말로 가르쳤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따
라 그 사람의 자질을 파악했다[古來老宿, 皆為慈悲之故, 有落草之談, 隨語識人].”고 나온다. 『벽암록』 제34칙에도
운문의 이 말이 인용되어 있다. 『운문록(상)』(선림고경총서 15), 합천:장경각, 1990, pp.127-128.
2) 불석미모不惜尾毛. 언어로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근본적인 진리와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눈썹이 없어
진다는 속설이 선문에 전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내 눈썹이 아직 붙어 있는가?”라는 의미의 “웨이마
오짜이마尾毛在麽?”이다. 여기서는 “말과 문자로 교화하다보면 눈썹이 떨어질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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