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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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리된 안내장을 받아보고서는 눈이 휘둥그레졌
습니다.
그동안 장안사·유점사 등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어떤 규모의 절이
었는지 본 적이 없어 마음에 느낌도 없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일제강점기 당시 찍은 유리건판 사진 등으로 금강산 일대와 주변 지역의
사찰 문화재를 확인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장안사 건축(사진 1)의 웅
장함·화려함·장엄함, 유점사 능인보전에 모셔진 53불 등에 입을 다물지 못
했습니다. “금강산, 금강산… ”이라고 말은 했지만 금강산 1만2천봉에 꽃피
웠던 암자와 불당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장안사, 유점사,
신계사 등에 있었던 장중하고 아름다운 15공포의 대웅전이 소실됐다는 사
실에 새삼스레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표훈사, 정양사, 묘
길상 마애불, 보덕암 등의 존재가 불자들에게 금강산이 어떤 산이었는지를
알려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안사의 역사를 살펴보니 신라 법흥
왕 때 창건하고 970년, 1477년, 1537년(중종 31)에 불타고 1545년(인종 1) 일청
스님이 중건했습니다. 6.25전쟁 중에 완전히 불타 버린 후 75년 동안 복원
의 기미도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안타까웠습니다.
‘북한 사찰사진전’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지는 않았지만, 스님들이 더러
다녀가시며 사진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암각화 사진전에 들리셨다가 ‘사찰 사진’ 전시회를 찾아오신 중진 스님들이
“이런 전시회가 다 있네!”라며 열심히 관람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참관하고
“고맙다.”며 떠난 스님들이 2-3 시간 지난 뒤 다시 전시장에 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그 중진 스님들이 한결 같이 “지금까지 장안사, 유점사, 신계
사라는 사찰 이름만 들었지, 실물은 꿈에도 보지 못하고 지나 왔는데, 오늘
여기서 장안사, 유점사, 신계사의 당우堂宇들과 법당 내부의 부처님, 3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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