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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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解題)
태고 보우스님의 어록은 태고어록(太古語錄), 태고화상어록(太古
和尙語錄) 또는 원증국사어록(圓證國師語錄)이라고도 하는데,시자
설서(雪栖)가 편집하였고,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에는 상당법문,시중,법어,가음명(歌吟銘)등이 수록되어 있고,
하권에는 게송,찬(讚),발(跋)등이 수록되어 있다.
스님의 입적 직후에(1383년)그의 문인 유창(維昌)이 쓴 행장(行狀)에
의하면,스님은 홍주(洪州)양근군(楊根郡)에서 태어났다(1301년).13세에
회암사(檜巖寺)로 출가하였고,26세에 승과(僧科)에 합격하였다.이후 10
여 년 간 수행하여 38세(1338년)에 활연히 깨치고 그 경지를 게송으로 표
현하였다.
그 후 1년 간 부모를 모시고 지내다가 소요산(逍遙山)백운암(白雲庵)
과 삼각산(三角山)중흥사(重興寺)등에 오래 머물렀다.46세에 연경(燕
京)으로 가서 대관사(大觀寺)에 머무르고,47세에 하무산(霞霧山)천호암
(天湖庵)에서 임제(臨濟)의 18대 손인 석옥 청공(石屋淸珙:1272~1352)
화상을 친견하고 인가를 받았다.이때 태고암가(太古庵歌)를 드리니
이에 발문을 써 주셨다.다시 연경으로 돌아와 영녕선사(永寧禪寺)에서
개당설법을 하고,이때 중국에 와 있던 현릉(玄陵:공민왕)을 만났다.
48 세에 귀국한 후 곧 용문산(龍門山)미원장(迷源莊)의 소설암(小雪
庵)에서 지내다가 56세에 봉은선사(奉恩禪寺)에서 개당설법을 하고 왕사
(王師)로 추대되었다(1356년).
이후로 홍건적의 침입과 신돈의 중상 등으로 희양산(曦陽山),가지산
(迦智山),속리산(俗離山)등으로 옮겨 지냈고,69세에 다시 소설암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