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고경 - 2015년 2월호 Vol.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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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제겐 든든한 관세음보살님 ‘빽’이 있는데요.”   렇게 사람들에게 모질게 했는지, 나쁜 짓은 왜 그렇게도 많이 했는지,
 축복받은 일이 분명했다. 불교에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초심자에게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읽으면서 지옥에 있는 중생이라도 나를 부르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만족하  기꺼이 달려가겠다는 말씀에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며 그렇게 오만하게 살아갔다. 어쩌다 들른 사찰에 갈 때면 뜻하지 않  21일 기도 회향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생긴 변화는 아무리 피
 은 일로 스님들과 각별한 인연으로 이어져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게   곤하여도 새벽 3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이다.
 되니 자만심은 나날이 더해갔다.
 그러나 그에 비례라도 하듯 내가 하는 일은 영 신통치 않았다. 그러  ● 『백일법문』을 만나면서 바뀐 삶      내게는 특별히 정해진 사
 다보니 건강 또한 악화되었다. 그때 외삼촌께서 말씀하셨다.   찰이 없다. 어디엔가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수수방관자
 내게 조용한 절에 가서 100일 기도를 정성껏 하면 내가 하는 일을 모  로 살아가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두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믿기 힘든 말이었다. 아니, 도저히   신촌에 있는 만덕사에는 어머님을 비롯한 우리 조상님들의 영가가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모두 모셔져 있어 각별하고, 종묘 옆에 있는 대각사에는 내가 존경하
 “흥, 외삼촌도 정말 웃기셔. 만약 기도를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는 용성 스님이 계셔서 좋고, 성북동 길상사는 그윽한 정취가 있어 가
 있다면 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 하루나 이틀도 아까울   끔씩 들르며, 보도각 백불이 계신 세검정 옥천암은 언제라도 시간에
 텐데 자그마치 100일이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 어리석은 짓을 할 사  구애됨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 개인적으로는 가장 선호하면서 자주
 람이 어디 있겠어.”   가는 사찰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나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옛 말이 틀린 것이 없듯이, 아웃
 나빠졌다. 얼굴은 까맣고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없어졌다. 그러다보  사이더 불자로 살다보니 세상의 모든 일에서도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니 ‘이러다 정말 죽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그 근원을 알게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몇년 전 조
 기도의 힘에 의존해보기로 하였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내 뜻과는   계사에서 개최된 재가불자를 위한 『백일법문』 강좌를 접하면서 성철
 너무나 딴판인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낙산사   큰스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알게 되었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실 때, 나
 홍련암에서 21일 기도를 하게 되었다. 불교의 입문을 우리나라 제일의   는 불경스럽게도 친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삼천배를 해
 관음도량에서 시작하였으니 그것 또한 내게 있어 큰 복이리라.   야만 만나준다는 그 말도 솔직히 우스웠고, 만나서 뭘 얻을 수 있단 말
 하루 4번 기도 시간 관음정근을 하고 수 없는 절을 하면서 나는 참으  인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좌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성철
 로 많은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 보니 왜 그  스님이 살아계셨을 때 만나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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