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5년 2월호 Vol.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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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끔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절대                                     것이다. 세존의 측근으로서 매일같이 세존의 수행을 보면서

          불가다.                                                                 자란 아난이, 그 총명한 아난이 수다원과를 얻고도 그런 일
            월광 보살의 제자와 더불어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잘                                   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을 통해서 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긴 게 죄인 아난 존자가 걸식 나갔다가 음란마귀에 씌워                                      역설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계가 그
          거의 파계할 지경에 이르는 첫 부분이다.                                               릇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깨지면 지금껏 닦아온 지혜와 선
            아난을 보고 첫눈에 반한 여인 마등가는 밥을 덮는 천에                                     정도 새어나갈 것이기 때문에.

          주문을 걸었다고 한다. 꼼짝없이 걸려든 아난이 썸을 탈 사                                       삼매 닦는 법을 설한 경을 읽으면서 삼매에 대해서는 정
          이도 없이 애무를 당하며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부처님이                                      작 알아낸 게 없다. 아쉽다. 이참에 직접 삼매를 닦아볼까
          알고 문수사리에게 신주(神呪)를 주어 아난을 구해오라고                                       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나 몇 초간 심사숙고 한 끝에, 그러기

          명한다. 큰무당 문수가 가서 악주(惡呪)를 물리치고 아난을                                     에는 근기가 너무 딸리고 이미 골병 들 나이가 되었다는 자
          구해오자 아난이, 제가 다문만 믿고 도를 열심히 닦지 않아                                     각이 뒤따랐다.
          서 어쩌고저쩌고…. 찔찔 짜면서 도 닦는 법을 청해 사마타                                       그냥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경속에서 반짝이는 주인공
          를 설하는 것으로 경이 시작된다.                                                   들을 만나본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아울러 내 드라마에 등
            옛 주석가들은 수다원과를 얻은 아난이 그럴 리가 없다                                      장했던 수많은 출연자들을 추억하고 내가 엑스트라를 맡았

          고 주장하기도 한다. 견도에 들면 무루심을 일으키는데 그                                      던 수많은 망작들을 기억하면서….
          에 동반하여 저절로 얻어지는 계가 있어서 구업과 신업은
          자동적으로 짓지 않게 된다는 설로, 이 경에서 아난이 신업

          을 지으며 위신을 구긴 것은 일종의 연출이라는 것이다. 그
          렇게 보면 부처님이 벌여놓은 판에 아난이 한 몸 던져 쓰리
          고에 피박 쓰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나는 옛 주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 말고도 『능
          엄경』에서는 음욕을 경계하는 내용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

          고 있다. 생사에 윤회하게 만드는 근본이 음욕이고 그것은
                                                                               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
          존재하려는 욕구, 유애 (有愛)와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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