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5년 3월호 Vol.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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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별어
로 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유명사로 바뀌었기 때문이
다. 어쨌거나 동네를 옮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일
이 아니다. 댐을 만들고 물을 채울 때도 주민들의 이주가 필
연못을 메운 자리에 요하지만, 반대로 기존 연못의 물을 빼내고 다른 용도로 전
사찰을 짓다 용하더라도 수중중생들을 이동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크
건 작건 적지 않는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계단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다
_ 원철 스님
속리산 법주사에 머물 때 가장 좋았던 것은 경내에 계단
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평평한 운동장 같은 넓은 터가
이런 깊은 산속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노스님들이 머물기 좋은 도량이 된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에게 계단을 오르내리라고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집단이주는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아니다.
합천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 주민들을 위하여 새로 팔만대장경과 큰법당 앞의 깎아지른 듯한 해인사 계단을
운 동네가 만들어졌다. 행정구역명은 ‘봉산면’이다. 다른 묵 보고는 이내 질린 표정을 지으며 계단 없는 우회로를 묻는
은 동네와는 달리 그야말로 ‘새마을’이다. 또 해인사 사하촌 관광객 어르신에게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을 지역민들은 ‘신부락’이라고 부른다. 해인사 일주문 앞까 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비상용 찻길의 쇠대문은 늘
지 빼곡히 들어서 있던 가게들을 문화재구역 정화사업의 일 잠겨 있다.) 해인사는 산을 깎아 만든 사찰인지라 가파른 경
환으로 한 곳에 집단이주 시키면서 새로 만든 마을이기 때 사의 계단을 이용하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구조다. 산
문이다. 을 깎아 넓은 운동장 같은 평지를 만드는 작업은 삽과 곡괭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동네는 영원히 ‘신부락’이다. ‘시 이 그리고 삼태기만 있던 시절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
골의 작은 새동네’라는 의미인 신촌이 화려한 도시의 번화 문이다. 이제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부담스럽고 또 평지
가가 되어도 여전히 ‘신촌’으로 불리듯이 처음에는 일반명사 가람에 사는 스님들을 부러워하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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