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고경 - 2015년 3월호 Vol.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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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로 보이는 인상 좋으신 두 보살님에게 앞자리에 앉아도 되겠냐 철 큰스님 부도 탑 앞에서 삼배로 우리가 왔음을 고했다. 해인사에 오
고 물으니 그렇게 하시라고 한다. 기분 좋은 출발이 분명하다. 10시 른다. 법당에 들려 삼배를 드리고 신라 비로자나부처님(쌍둥이)에게
15분.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방배동을 출발하였다. 날씨는 맑고 화 도, 간절한 기원을 모아 탑돌이를 하였다.
창하였으며 주말이라 붐빌 것 같았던 고속도로는 한적하기조차 하였
다. 5. 백련암 백련암을 나는 아주 작은 암자로만 생각했었다. 그런
입속으로 능엄주를 독송하였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과수원 데 생각보다 꽤 큰 사찰이었다. 성철 큰스님 동상(?)이 모셔진 고심원
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손끝이 바쁘기만 하다. 한가로운 모습, 가야산 에 들어갔다. 한 무리의 법복으로 단장한(?) 보살님들이 부처님 명호
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해인사는 얼마나 웅장하며, 백련암은 또 어 를 부르고 절을 하고 있다. 그 모습도 아름다울 뿐더러 일정한 곡조에
떠할까? 좁은 산문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서 계신 성철 큰스님의 사진 맞추어 부르는 부처님 명호가 장엄하기 그지없다. 나는 정성스럽게 삼
이 떠올랐다. 드디어 그곳에 내가 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가 배를 하였다. 전국에서 오신 많은 아비라카페 도반들이 관음전에 모였
슴이 두근거린다. 다.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고 법당이 가득 찼다. 나이는 네 살 정도 어
린 아이부터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보살님까지 다양하다. 삼천배에 앞
4. 가야산 성주를 지난다. 문득 오래전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의 서 원택 큰스님께서 성철 스님과 삼천배의 일화를 말씀해주셨고, 7시
고향이 그곳이라는 사실에 내 마음은 잠시 흔들린다. 논 곳곳에 짙푸 30분, 12분 100배를 목표로 1000배 800배, 600배 400배 200배
른 벼가 자라고 있다. 벌써 모내기를 한 것일까? 그러나 그건 벼가 아 뒤에 각각 30분씩 휴식을 갖는 것으로 기도는 시작하였다.
니라 마늘이었다. 드디어 가야산 해인사 입구에 당도하였다. 조금 전 고심원에서 들었던 지심귀명례를 부르며 한 분 한 분 부처님
나는 차창이 닫힌 줄도 모르고 손을 내밀어 소나무와 악수를 하려다 명호를 부르며 삼천배를 시작하였다. 생소한 부처님 명호와 소리와 절
멈칫하였다. 해인사로 향하는 좁은 2차선의 포장된 도로는 방금 비질 을 따라하느라 숨이 차고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을 마친 듯 깨끗하기만 하다. 사찰 초입에 초소에 이르러 백련암에 가 1000배가 무사히 끝났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몸을 간신히 추슬러
는 길이라고 하니 통과를 허락한다. 다시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달린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밖으로 나왔다. 문득 하늘을 보니 그 어느 때보
다. 해인사 입구에 이르러 마음씨 좋아 보이는 기사님은 우리를 내려 다 밝은 반달이 정수리에서 수고했다며 환한 웃음을 준다. 북두칠성과
주고 내일 아침 8시를 기약하고 버스는 오던 길을 되돌아 소나무 숲길 오리온이 선명하다.
로 사라졌다. 딸기와 오렌지, 커피, 사탕, 떡 등 따스한 도반님들의 정성스런 음식
우리 일행은 해인사를 참배하고 백련암에 오르기로 하였다. 먼저 성 으로 피로한 심신을 다스린다. 다시 800배를 시작하고 1800배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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