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15년 8월호 Vo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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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스님의 영정을 뵙다      생가터에 보은탑을 세우다

 얼마 전 교계신문(현대불교 2015.7.16.)에서 지관(智冠, 1932~   지관 스님 생가터에서 탄신다례가 열린다(2015.6.26.)는 전
 2012) 스님의 영정을 뵙게 되었다. 물론 김호석 화백의 작품  갈을 받았다. 동대구역에서 포항행 KTX에 올랐다. 서울에
 이다. 작가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4점을 그렸다고 했다. 물  서 내려오는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식구들과 합류했다. 청하
 론 마지막 작품 1점을 제자들이 모셔갔다고 한다. 그런데 퇴  면 유계리 목적지에 도착하니 경주 이씨 문중어른들도 자리
 짜 맞은 3점은 당신이 소장하고 있었다. 글의 뉘앙스를 보아  를 함께 하고 있었다. 스님은 출가 후 속가의 친인척 인연을

 하니 모르긴 해도 그 가운데 가장 당신 마음에 드는 역작이   멀리했으며, 고향도 60년 만인 2010년 처음 찾았다고 한다.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작가의 안목과 의뢰자의 기대감이   그 소회를 이렇게 남겼다.
 일치할 수 없는 것이 중생세계인 까닭이다. 후일 전람회장에

 서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겠다.  “유계리 이 자리는 이 몸 받아 태어난 곳/나기 전에 뉘였
 영정작업을 위해 생전에 4번 친견기회를 가졌다고 했다.   으며 난 후에는 누구인가……. 60년 지난 후에 고향 땅을
 조계사 총무원장 집무실, 오래 머물렀던 서울 정릉의 경국
 사, 그리고 당신의 원력이 서려 있는 서울 명륜동 가산불교
 문화연구원 그리고 함께 식사한 소공동의 어느 식당이었다.

 모두 그림을 위한 자리였다. 스케치와 스냅사진을 찍으며 작
 가는 스님의 인상에 대하여 메모를 남겼다.



 “첫 느낌은 건장함과 단단함이었다. 골격은 크고 굵었으
 며 움직임에 여유를 더하여 기품이 있었다. 얼굴은 수려했
 고 얼굴빛은 맑았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고 몸으로 체득
 한 온화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동

 공의 뽓뽓함 속에서 고집과 집념 그리고 의지와 근기 등이
 내밀하게 감추어져 있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얼굴은 이목
 구비가 또렷했고 콧날과 귀가 컸다.”                   지관 스님이 세운 고향 방문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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