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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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본 동경대학교로 유학을 떠나면서 “스님! 『벽암록』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다리다가 2년여의 세월이 지나 봉선

          제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차분히 연구하여 번역을 마쳤으                                      사로 월운 큰스님께 문안 인사를 갔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반
          면 합니다. 『벽암록』 출판을 너무 서두르지 마시지요.”라며                                    가워하시기보다 멋쩍은 모습으로 “원택 스님이구먼. 그래 그
          청을 해서 “기다리겠습니다. 학위 중인데 너무 무거운 짐이                                     때 내가 약속을 잘못 했어. 나도 번역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
          안 될지 걱정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신 선생이 일본으로 떠                                    서 승낙은 했었는데 생각보다 그 어록 번역이 어렵네. 포기
          나고 나서 얼마 후 저도 용기를 내서 봉선사로 월운 큰스님                                     한다는 말은 안 할 테니까 소식 있을 때까지 넉넉히 기다려

          을 찾아뵙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번역이 어렵네.”라는 말씀
            “큰스님! 바쁘신 가운데 찾아뵈었습니다. 지금 성철 종정                                    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기다리라고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고
          스님의 명으로 백련암에서 선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종                                     마웠는지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던 기억입

          용록』 번역을 맡길 수 있는 능력자를 찾지 못해서 종정스님                                     니다.
          께 말씀드리고 염치불구하고 큰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세                                         동경대 동양철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였던 신 선생이 석
          월에 구애되지 마시고 『종용록』 번역을 해주십사 청을 드립                                     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안부와 함께 소
          니다.”                                                                 식을 전해 왔습니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지도교수님이
            “그래요? 내 바쁜 거 원택 스님도 잘 알잖아요? 그런데 나                                  정해졌는데 지도교수님께서 암파문고(岩波文庫)의 『벽암록』

          도 『종용록』을 한 번 번역해 볼까하는 생각도 한 적은 있지.                                   을 새롭게 번역하게 되었다 하시며 『벽암록』에 관심이 있느
          같은 번역 사업이니 한 번 해볼까? 그러나 너무 빨리 조르                                     냐고 물어 왔습니다. 마침 저도 『벽암록』의 한글 번역 중이
          지는 않기로 하지.”라고 하셨습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선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벽암록』 번역은 빨리 진행될 것 같습

          선히 승낙하신 셈이 되어서 저는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머                                      니다.”
          리를 조아리며 “고맙습니다.”고만 연발하며 가벼운 걸음으                                        어렵게만 생각되던 『벽암록』과 『종용록』의 번역 작업이
          로 돌아왔습니다. 때때로 원고 번역과정이 궁금하였지만 ‘조                                     뭔가 밝은 전망을 갖게 되니 큰 근심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
          르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자주 찾아가 여쭐 수가 없었습                                     습니다. 1년여의 세월이 지난 뒤 봉선사에서 “다녀가라”는
          니다.                                                                  전갈이 왔습니다. 쿵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봉선사로

            인편으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월운 큰스님의 근                                     달려갔습니다.
          황에 대해서 묻기도 하였지만 『종용록』 번역에 대한 얘기는                                       “원택 스님! 그때 『종용록』 번역을 허락해놓고 내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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