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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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후회했는지 모르네. 내 번역도 얼마나 많은데 말이지. 그 으로 불려왔고 ‘종문제일서 (宗門第一書)’라는 칭호와 함께 선
러나 백련암 선서 번역사업도 작은 일도 아니고, 성철 큰스 서 (禪書)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설두 스님
님께서 마음 두신 일이라 하여 포기하지 않고 하기는 했지 이 뽑은 ‘본칙’과 ‘송’에 원오 스님이 덧붙인 ‘수시’, ‘평창’, ‘착
만 내용이 어려워 고생 꽤나 했네. 이게 원고이네.” 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벽암록』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밀
월운 큰스님께서 3년 넘게 걸린 작업 끝에 건네주신 『종 도 있게 완성되어 중당 이후의 문단의 중심적인 사조인 돈
용록』 원고를 받아든 저의 두 손이 떨리지 않을 수 있겠습 오무심 (頓悟無心) 사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습니다.
니까? 그렇게 애써주셨으니 너무 고맙고 고마워 눈물이 핑 더구나 송대의 『창랑시화(滄浪詩話)』 등의 시평어집에서
그르르 돌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돌아와 성철 큰스님께 저 당대에 유행하던 돈오돈수 사상을 근거로 당시 (唐詩)를 평가
간의 말씀을 드리며 『종용록』 원고를 보여 드렸습니다. 한 것을 상기할 때 『벽암록』이 갖는 불교문화사적 위치는 대
“그 바쁜 스님이 <선림고경총서> 번역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단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니 정말 고마운 일이군. 운허 큰스님께서도 해인사를 더러
다녀가셨지. 우리시대에 참 점잖은 어른이셨어. 옆에서 이렇 한편 『종용록』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천동정각(1091~
게 애쓰는데 번역사업 마무리 잘 해라 인마!” 1157)이 설두 선사의 예에 따라 고칙 100개를 뽑아 거기에
이렇게 해서 월운 큰스님과 신규탁 교수 덕분으로 우리나 송을 붙인 『정각송고』에 조동종의 만송행수(1166~1246)가
라에서는 최초로 『종용록』과 『벽암록』 완역이라는 큰일을 본칙 앞에 시중(示衆) 또는 수시(垂示)라는 것을 썼고, 본칙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과 송 끝에는 각기 착어 (著語)라는 것을 붙이니, 이것이 평창
(評唱)이요, 본칙과 송의 구간(句間)에 단평(短評)을 각주(脚
선문에서는 옛 조사들이 남긴 말씀 중에서 후세에 귀감 註)로 넣으니 이것 또한 평(評)입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종
이 될 만한 것을 고칙(古則)이라고 합니다. 설두중현(980~ 용록』 6권은 조동종계의 송고서로서 임제종계의 『벽암록』
1052)이 설두산의 자성사에 머물면서 고칙 가운데 100개를 10권과 쌍벽을 이루는 선적입니다. 여기에 임천 (林泉)의 『공
정리하고 거기에 송을 붙인 것이 『설두송고』입니다. 설두 스 곡집 (空谷集)』과 『허당집(虛堂集)』을 합하여 평창사가(評唱四
님은 운문종의 4세입니다. 이 『설두송고』를 저본으로 원오 家)라 하여 유명하나, 우아한 문장, 예리한 기지에 있어서는
극근(1063~1135) 스님이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제창(提唱)한 단연 『종용록』이 으뜸인 것으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것이 『벽암록』이며 『벽암집』 또는 『불과원오선사 벽암록』 등
6 고경 2015.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