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P. 64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어 떡이 무사한                                       되었습니다. 예전의 부러움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무엇

          지 확인하며 뿌듯해 하고 있던 차에 영산재 팜플릿과 정심                                         하나 부족함 없는 새 공양간에서 맑고 청정하신 우리 스
          사 소식지가 눈에 들어왔다. 절 입구에서 받아 넣고는 까맣                                        님들과 기도제일 보살님들께 정성을 다하여 공양지어 드
          게 잊었는데 무료한 차에 훑어보다가 마음에 점을 찍는 글                                         리오니 언제나 편안하게 드시길 발원합니다.
          을 만났다.                                                                                                   - 공양주 법연행 합장
            ‘부러움과 간절함이 인연되어’라는 제목으로 공양주 보살
          님이 쓴 글이다.                                                              그 밑에-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버섯유부탕을 소개합니
                                                                               다-라는 제목으로 재료와 요리법을 소개했다. 요리에 전혀
             “이 깊은 가을 날, 무성했던 잎사귀를 떨구고 가벼워지                                    관심 없는 사람도 한번쯤 만들어보고 싶게 써 놨다.

             는 나무를 보며 인생을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나무
             에 매달려 있는 메마른 낙엽도 있지만, 바람 한 번에 미                                       1. 각종 버섯(표고, 느타리, 팽이버섯 등)을 다지고 두부는 꼭 짜서
             련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이 더 보기 좋습니다.” 2000년                                       으깨고 호박은 채쳐서 소금에 살짝 절여 꼭 짜고 모두 섞어 속
                                                                                    을 만든다.
             경, 정심사 도량에 가을이 완연하던 어느 일요법회의 주
                                                                                   2. 냉동유부는 뜨거운 물에 데쳐 속을 넣고 데친 미나리로 입을
             지스님 법문 중 제 마음에 잔잔히 남아 있는 말씀 일부
                                                                                    묶는다.
             입니다. 하남에 살던 저는 타 사찰의 불교대학을 졸업하
                                                                                   3. 냄비에 배추와 두부, 버섯 등을 돌려가며 담고 표고, 무, 다시
             고 초발심에 수행처를 찾던 중 친구의 권유로 정심사에
                                                                                    마로 끓인 육수를 부어 끓으면 청양고추를 넣다 빼고 소금으로
             서 삼천배기도와 일요법회에 참석하며 부처님 법을 알아                                          간한다. 마지막으로 쑥갓을 넣고 불을 끈다.
             가는 기쁨으로 그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 당시 공양간에
             는 두 분의 노보살님이 계셨는데 스님께 공양 올리는 모                                      이분한테 밥 얻어먹는 정심사 스님들과 신도들, 복 받았
             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어떻게 하면 나도 스님공양을                                    다. 소림사 주방장도 이분에게 질 것 같다. 옛날에 소림사 무
             해드릴 수 있을까’ 마냥 부러웠습니다. 그 후 지방으로 이                                  술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주방장이 초절정고수라는 게 밝혀
             사를 갔고 몸과 마음에 찾아온 불청객으로 작은 암자에                                     지곤 했는데 여기 공양주가 숨은 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

             요양 겸 들어갔다가 그 절의 공양주를 살았습니다. 그렇                                    을 해봤다.
             게 정심사와의 인연이 아주 멀어진 줄 알았는데 작년 늦
                                                                               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
             가을, 십수 년 만에 다시 찾은 정심사에 공양주로 오게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62                                         고경  2015. 11.                                                               63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