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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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칙】   도 넘나들 수 없는 역사요 양심이므로.

 운문의 노주(雲門露柱, 운문노주)
            【제32칙】
 운문문언(雲門文偃)이 다음과 같이 일렀다. “법당의 옛 부  앙산의 마음과 경계(仰山心境, 앙산심경)
 처님과 노주가 한판 붙었으니 이는 어찌된 영문인가?” 대
 중이 말이 없자 스스로 대신 말했다. “남산에 구름이 일  앙산혜적에게 어떤 객승이 찾아왔다. “어디서 왔는가?”

 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그대는 그쪽 일을 생각하는가?”
            “항상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자는 마음이요 생각하는
 조사선에 힘입은 도인들은 격외(格外)를 즐긴다. ‘격’이란   바는 경계다. 그러니 그곳의 산하대지 누대 전각 인간 가

 세속의 규격,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짜 맞춘 틀을 의미한  축 등의 물건에 대하여 생각하는 그놈을 돌이켜 생각해
 다.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관습, 상  보라. 그 여러 가지가 있는가?” “저는 거기에 이르러 전혀
 식, 통념 등이 포함된다. 규격화된 인간이 잘 사는 법이다.   보이는 게 없습니다.” 이에 앙산은 “믿음의 지위는 옳으나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제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가며 틀   사람(수행)의 지위는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궁금했던 객
 안을 비집고 들어가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 애쓴다.         승은 “화상께서 따로 가르쳐주실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반면 격외란 규격의 바깥을 따르는 길이다. 흔히 자유 혹  물었다. 앙산의 대답이다. “따로 있다거나 따로 없다거나
 은 초월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거대한 순응에 가깝다. 볼품없  하면 맞지 않는다. 그대의 소견을 보니 겨우 하나의 현묘
 는 대로 비뚤어진 대로 살아가는 일이다. 법당의 불상과 기  함만을 얻었을 뿐이다. 앉을 자리를 얻어 옷을 걸치게 되

 둥이 들붙어 한껏 놀아나더라도, 기겁하거나 욕하지 않고   거든 그 뒤부터 스스로 살펴보라.”
 그냥 봐준다. 구름은 남산 위에 끼었는데 정작 비는 북산에
 서 내리더라도, 목마름에 절망하지 않는다.        “원 (圓) 안에 들어가도 몽둥이 30방, 들어가지 않아도 30
 개선될 순 있어도 소멸하진 않는 것이 모순이다. 살다보면   방”이란 화두는 유명하다. 스승은 생사의 경계를 뛰어넘으
 내 다리를 긁었는데 남이 시원해하고 열심히 걷는다고 걸었  라며 이런 식으로 제자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여하튼 난해

 는데 항상 벼랑과 마주하는 일이 적지 않다. 결국엔 ‘걸었다’  한 문제인데, “스승이 땅바닥에 그려놓은 원을 슬며시 지우
 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  면 된다.”는 누군가의 답변이 솔깃하다. 생사의 경계가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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