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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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견                     ●   글 _ 원택 스님                                과 더불어 성철 큰스님께서 후학들의 정법안장을 다지기 위

                                                                               해 도량을 개설한 큰 뜻을 후대에 전할 필요성이 크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혹한 속의 봉암사                                                               그래서 큰스님 열반 후 당신이 열망하셨던 ‘봉암사의 꿈’
                                                                               을 후학들에게 다짐한다는 의미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맞

         대중공양                                                                  이해서 봉암사 대중공양을 우선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었
                                                                               습니다. 그 후 1994년 하안거부터 올 동안거까지 22년 동안
                                                                               변함없이 대중공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소납
                                                                               이 다리를 다쳐 치료를 하고 요양을 했던 2년여 동안 봉암사

                                                                               를 방문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22년 동안 매회 80여 명
                                                                               안팎의 백련암 신도님들은 빠짐없이 봉암사 대중공양에 동참
           ●                                                                   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아비라기도를 하던 11월 22일에                                   봉암사 대중공양 날짜를 잡아 놓고 있던, 지난 12월 중순
         신도 대표들이 모여서 동안거 봉암사 대중공양 날짜를 논의                                       에 향적 해인사 주지스님께서 6차 화엄 21 천도법회 7번째

         하게 되었습니다. 소한 추위를 피하니 곧바로 해인사 동안거                                      49재 법회에 법사로서 참석하여 신도님들에게 법문을 청하
         7일 용맹정진 기간과 납월 8일 성도절이 이어져 있어서 병신                                     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계산해보니 그날이 마침 1월 18일이
         년 1월 19일로 대중공양 날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었습니다. 마침 또 월요일이니 일요일에 백련암에 들어가 월

           봉암사 대중공양에 대해서는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려야겠                                       요일에 해인사에서 법문을 하고 다음날 19일에 봉암사로 출
         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 1993년 11월에 열반에 드신 후 문                                   발하면 일정이 맞아서 승낙을 했습니다.
         도스님들이 모여서 큰스님 사후의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논                                         우리 속담에 ‘소한에 대한이 얼어 죽는다’ 또는 ‘소한에 대
         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결정된 일 가운데 하나가 큰스님                                     한이 울고 간다’는 말이 있듯이 소한 추위가 대한보다 더 혹
         생애 가운데 크게 기념해야 될 것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독하다는 것을 많은 체험을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

         기치 아래 광복 후 1947년 가을부터 진행한 봉암사 결사였                                     해는 소한 때 오히려 날씨가 푸근하여 온난화의 현상을 느끼
         습니다. 결사를 통해 청담 큰스님, 자운 큰스님, 향곡 큰스님                                    는 따스한 소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이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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