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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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곡 주지스님을 찾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산중 어른

 으로 계신 적명 수좌스님을 찾아뵙고 정중히 삼배를 올렸습
 니다. 디스크로 고생하신다 하셨는데 지금은 지팡이도 짚지
 않고 다닌다며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며 다행이라 하셨습
 니다. 작년 봄에 있었던 해인사 방장 선거를 못내 아쉬워하시
 며 해인사 안정을 누구보다 바라시고 걱정을 하셔서 부끄러

 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수원 봉녕사 학장이셨던 묘엄 스님께서 구술한 『회색고무
 신』이라는 자전적 책에는 스님이 20세가 못된 시절에 체험했

 던 봉암사 시절에 대한 회고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계십니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과 원택 스님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의 희양산에 있는 봉암사에서는 일제 치하   입니까?”
 36년 동안 제 모습을 잃어버린 우리나라 불교를 바로 일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70여 년 전, 조선 현종 15년에 불
 으켜 세우려는 결의와 각오로 스무 명 넘는 스님들이 무  에 타버린 것을 신화 스님이 다시 세웠고, 30여 년 전 세

 서우리만큼 눈을 시퍼렇게 뜨고 처절한 수행을 하고 있  욱 스님이 중건하셨다.”
 었다.         “그러면 이 절은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네요?”
 “묘엄이 너, 이절 봉암사가 어떤 절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  “그런 셈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 절 봉암사에서는 고려

 다. 이 봉암사는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이름을 드날린 희  때 보조지눌 국사가 수행하셨고, 조선 세종 때 배불정책
 양산문의 본산이다.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인 신라   이 기승을 부릴 적에는 함허득통 스님께서 선풍을 드날
 헌강왕 5년 지증 국사가 창건하셨고, 그 후 고려 태종 18  린 곳이다. 말하자면 그때 그때마다 새로운 불교의 활력
 년에 정진 (靜眞) 국사가 중창하셨다. 지금 이 절에 남아   을 되살린 곳이 바로 이 봉암사란 말이다.”
 있는 두 탑비가 바로 지증 국사와 정진 국사의 탑비인 기  “아 예. 그래서 이 봉암사에서……”

 라. 그리고 지금도 서 있는 3층 석탑은 나라의 보물이다.”  “그렇지. 우리가 이 봉암사에서 결사를 하게 된 것도 다
 “그러면 스님, 지금 이 절이 1000년 전에 지은 거란 말씀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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