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고경 - 2016년 4월호 Vol.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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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겠다. 경을 결집하는 일에 아난만큼 적임자는 없었을 것 정당들은 흙수저당, 농민당, 비정규직철폐당 등 당명에서부터
이다. 기능적으로만 보면 다문제일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나 정체성을 내세우며 각자 놀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한다. 선거
결집에는 기준이 있었으니, '아라한의 과를 얻은 자'만 참여 판이 쪼개지니 유권자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할 수 있었다. 가섭이 권세를 휘둘러 아난을 배제한 것이 아 나는 요즘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들의 강령이나 정
니라 공천 시스템을 가동시킨 덕분에 불법이 유지되고 지금 책들을 훑어보고 후보자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보는 중이
까지 우리가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다. 젊었을 때는 선거일을 노는 날쯤으로 생각하던 내가 이렇
또 하나를 들자면, 지금 불교계는 그렇지 않지만, 얼마 전 게 고민하는 유권자가 된 데는 정치가 고통을 덜어줄 수 있
까지만 해도 절에서 주지 등의 소임을 뽑는 데는 대방공사라 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근본적인 고통이야 부
는 시스템이 있었다고 한다. 대중이 다 모여서 공개적으로 후 처님의 가르침만이 약이 되겠지만 정치가 당장의 불행과 미
보를 추천하면, 이의제기를 받아 토의를 거쳐 다른 후보를 추 래의 불안을 어느 정도는 완화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천하든지 별 문제 없으면 신속히 결정한다. 임명장 같은 것도 나 혼자 겪는 문제는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건
없고 죽비 세 번 치는 것으로 대방공사는 마무리된다. 후보 대체로 돈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로 추천되었으나 직을 맡기 싫은 스님은 도망가기도 한단다. 지, 가족에게서 무엇을 뺏어갈 수 있는지, 돈의 힘은 무자비
이런 예로 해인사 율원장이었던 야반도주 일타 스님을 들 수 하다. 가장이 되어 늙고 아픈 부모를 돌보며 살다 보니 부모
있다. 를 원망하는 마음과 함께 국가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그러나 말법의 사바세계 대한민국 선거에서 이런 수준을 되었다. 내 부모는 몇 십 년 동안을 거르지 않고 납세의 의무
기대할 수는 없다. 공천의 기준이 없다 보니 정책은 실종되 를 다했는데 늙고 아플 때가 되어서는 나라가 별로 해주는
고 인맥만 남았다. 인맥만 남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을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국민의 의무를 다한 분들이 늙고 아플
안겨준 기득권인 주제에 ‘내 나이가 어때서? 출마하기 딱 좋 때 어째서 나라에서 돌봐주지 않는가 하는 원망이 들었다.
은 나인데!’를 내걸며 인맥을 타고 또 출마한 연쇄 출마범들 그런 중에 가끔 고마운 정책을 만났다. 암환자 본인 부담
도 많다. 그 인맥은 실로 연원과 갈래가 복잡하다. 여당은 친 률을 깎아준 정책 덕분에 아버지 아플 때 빚을 덜 질 수 있
박과 비박으로 나뉘고 친박은 다시 진박, 비진박, 애박(애틋한 었다. 몸을 쓰지 못하고 정신도 온전치 않은 엄마를 요양보호
박이란다)으로 나뉘며, 비박은 배박, 탈박, 쪽박 등으로 분류된 사가 매일 네 시간씩 돌봐준 일도 있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다. 산산조각이 난 야당은 더 말할 것 없다. 새로 생긴 작은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12만원에 해결할 수 있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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