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16년 6월호 Vol.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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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본래 없습니다.   다. 중생도 부처도 연기 무아입니다. 연기 무아를 깨치는 것이

 그런데 우리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중생이라 착  니 깨달음 그 자리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각하며 평생 살아가고 있으니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  선문(禪門)에서는 중생과 부처의 양변을 인정하지 않으니
 다. 내가 본래 무아 공인데, ‘있다’는 착각에 빠져 편견으로 살  중생이 닦아서 부처 된다는 말도 방편으로 쓰는 말이지 실법
 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식을 만나 내 자성이 본래   이 아닙니다. 본래 부처인데 중생이라 착각하고 있으니 몰록
 실체가 없는 무아, 공이란 것을 바로 알면 돈오한다는 것입니  깨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는 겁니다. 찰나 간에 착각만 비우
 다. 아(我), 나라고 할 실체가 본래 없는데 내가 착각해서 중  면 됩니다. 찰나 간에 비우니 단박에 닦는 돈수(頓修)라고 합
 생이니 부처니, 깨달음이니 번뇌니 하고 양변에 집착하고 살  니다.
 았구나! 이것을 단박에 깨치는 것이 바로 돈오선입니다.   그렇다면, 평생 선방에서 좌선하는 것은 닦는 것이 아니고

 비유하면, 우리가 잠 잘 때 꿈을 꾸다 깹니다. 꿈꾸다가 깨  뭐냐? 이것은 아직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꿈속
 어날 때는 찰나 간에 깨어나지요? 꿈 깨는 것과 같은 것이 돈  일입니다. 깨치지 못하고 착각 속의 일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
 오, 단박 깨침입니다. 우리가 내가 중생이라 착각하고 살다가   직 자신이 무아 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중생이라는 착각에서
 선지식의 돈오 법문을 듣고 내가 중생이라는 착각만 단박 깨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아직 달이 아닌
 치면 현실을 바로 보게 됩니다. 꿈속을 헤매다 깨어나면 꿈  손가락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법이 아니니 진실이라 할 수 없
 속 일이 모두 허망하고 사실이 아니듯이 착각에서 벗어나며   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열립니다.   선문에서 돈오를 잘 설명한 법어로 마조 스님의 제자 대주
          스님의 설명이 유명합니다.
 ● 단박 깨침이니 단박에 닦는 돈수(頓修)
 중생이라는 착각만 단박 깨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 영원  “돈오(頓悟)란 무엇인가? 돈이란 단박에 번뇌망상을 없애,
 히 지혜로워집니다. 깨달음이 꿈 깨는 것과 같으니 점차 깨치  오란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는 것이 아니고 찰나 간에 깨칩니다. 단박에 깨치니 단박에                 - 『돈오입도요문론』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문에서는 점점 닦아간다거나 점점 깨친다는 말  번뇌망상은 실체가 없습니다.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나도 실
 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중생-부처, 번뇌-지혜, 못깨침-깨침   체가 없는 무아, 공입니다. 그러니 내가 있다는 번뇌망상만 비
 등 일체의 대립하는 양변이 실체가 없고 연기 현상일 뿐입니  우면, 깨달을 것도 없다는 것을 깨치는 겁니다. 결국,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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