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6년 6월호 Vol.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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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란 일체의 번뇌망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번뇌를 완전히 깨달을 것도 닦을 것도 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되
비워야 깨달음입니다. 어 있고, 깨달아져 있습니다. 단지 ‘내가 있다’ ‘나는 중생이
어떤 이는 깨달아 부처가 되어도 습기나 미세한 망념은 있 다’는 착각과 망상만 몰록 깨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는 겁니
지 않겠는가? 하고 묻습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다. 본래는 깨달을 것도 닦을 것도 없는 무돈무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각(無 그러면 또 이렇게 물어요. “무돈무수면 애써서 공부할 필
上正等覺)이란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습기 요가 없네요?” 번뇌망상과 착각에서 단박에 벗어나면 수행이
나 미세 망념이 남아 있는 깨달음이 아니고 완전한 깨달음을 란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누가 단박
말하는 것입니다. 에 착각에서 깨칠 수 있습니까? 육조 스님도 8개월 행자생활
그래서 선에서는 깨달음을 확철대오란 말을 쓰기도 합니 을 했고, 성철 스님도 재가자로 화두 참선해서 42일 만에 동
다. 확실하게 크게 깨쳤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미세 망념이나 정일여에 이르렀고, 그 뒤에도 장좌불와 하는 등 각고의 정진
습기까지도 완전히 비워 생로병사를 해탈한 경지를 말합니다. 을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마지막 번뇌까지 비
우는 완전한 깨달음인 돈오돈수까지 밀고 나가 확철대오해야
● 왜, 돈오돈수를 알지 못하는가? 합니다.
돈오와 돈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 드려도 아직도 알지 못 번뇌망상과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오하려면 진심으로
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왜 깨달음을 돈오 노력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세상에 그냥 되는 법은 없습니다.
점수, 점오점수로 이해하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내가 본래부처라는 자기 자신에 믿음과 돈오라는 확신
대체로 돈오돈수의 사상적인 근거는 중도연기이고, 점오점 을 가지고 한 생각 한 생각, 매일 매일 공부해나가면 그 과정
수의 기반은 생멸연기 (生滅緣起, 내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으니 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설사 확철대오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
무아라는 입장. 여기에는 生死가 있다)입니다. 나와 우주만물의 존 닦아가는 과정도 지혜로워지고 밝아집니다. 하는 만큼 행복
재원리가 중도연기 (中道緣起, 내가 태어나는 것도 무아, 늙고 병드는 합니다.
것도, 죽는 것도 그대로 무아라는 입장. 여기에는 生死가 하나다)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깨달음이란 것도 무아, 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제 깨칠 게 없는 것을 깨치는 것입니다. 박희승(중효) ●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실장, 한국문화연수원 위촉교수, (재)조계
그래서 저는 누가 “스님은 돈오돈수입니까, 돈오점수입니 종 선문화복지회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사업단장, 동국대 평생교육원과 겁외사에서 “생활참
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선지식에 길을 묻다』와 『고우스님 육조단경 강설』 등
까?” 하고 물으면, 나는 무돈무수(無頓無修)다 하고 말합니다.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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