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16년 6월호 Vol.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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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로 구분된 변견에 뿌리를 둔 진영논리는 자신의 주
장만이 옳다는 확신에 빠져들게 만들고, 다른 생각에 대한
구별짓기와 차별로 이어진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면 중재를
제안하거나 화해를 이야기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상대
편은 배제와 극복의 대상일 뿐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가차 없이 악으로 규정짓고 단죄하려 든다.
선악으로 양단된 가치관은 필연적으로 선에 의한 악의 지
배를 정당화 되고, 선을 명분으로 차별의 담론과 배제의 폭력
을 합리화 한다. 승찬 대사는 ‘지극한 도는 좋고 싫음을 따지
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중생들은 좋은 것
과 나쁜 것을 분별하는 것에 매몰되어 있고, 그로부터 번뇌
가 일어남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차별변견으로 온 사회
백련암 마당을 거닐고 있는 성철 스님
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통 받는 사례를 수 없이 보
아 왔다. 종교적 갈등이 그랬고, 동서의 이념대결이 그랬다.
역갈등, 경제적 불평등을 둘러싼 빈부갈등 등 두 편으로 갈 대립과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라져 대립하고 충돌하는 사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죽음으로 내몰았다.
다양하다.
그러나 갈등의 양상은 비록 다양하지만 결국은 나와 남, 남 ● 존재의 실상과 쌍차쌍조
과 여, 진보와 보수와 같은 이분법적 대립으로 압축된다. 세 그렇다면 이와 같은 차별과 변견의 골을 어떻게 넘을 수 있
상을 두 편으로 나누고, 어느 한 편에 서서 바라보는 것을 ‘변 을까? 부처님은 그와 같은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방법으로
견 (邊見)’이라고 한다. 변견은 극단적 시선이므로 자신이 속한 중도(中道)의 길을 제시했다. 중도는 이분법적 사유에 뿌리를
쪽과 반대편을 둘로 나누는 진영논리로 발전한다. 진영논리 둔 양변을 초극하는 것이며, 대립하고 갈등하는 진영논리를
는 복잡한 현상을 양자대결로 단순화시키고, 다양한 관점과 해체하는 것이며, 화해와 공존의 길을 제시하는 가르침이다.
주장을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몰아간다. 문제는 어떻게 중도를 실현하는가이다. 이에 대해 천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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