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17년 2월호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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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유자이긴대 이러한 불가사의한 통찰력을 가젓는지 참으로 경
탄치 안이치 못할 것이다.
자신을 돌이키는 것으로
라. 일호구억충(一毫九億虫)과 전자현미경
으뜸을 삼는다
“내가 보니 일적수(一滴水)에 팔만사천충(八萬四千虫)이로
글 : 박인석
다” [吾觀一滴水 八萬四千蟲–정식게(淨食偈)] 11)
이것은 불교에서 삼시 식사 때 항상 외우는 정식게(淨食偈)
의 일구(一句)이다. 삼천 전 인간으로써 일적수(一滴水) 에 팔
12)
『명추회요』의 62권-3판(500쪽)에서 발췌된 내용의 제목은
만충(八萬虫)이 있다는 말은 실로 상상도 못한 소리이다. 그뿐
‘자신을 돌이키는 것으로 으뜸을 삼는다’이다. 이 단락의 전후
안이라 또 말했다.[05b]
에는 유식학(唯識學)의 내용이 많이 인용되는데, ‘자신을 돌이
키는 것’이 유식학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 한번 생각해볼
11) 정식게(淨食偈)는 발우공양 때 외우는 게송이다. “물 한 방울을 보아도 팔 만하다. 우선 ‘자신을 돌이키는 것’을 뜻하는 반기 (反己)는 중
만 사천의 벌레가 있으니 이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 국철학의 오랜 전통 속에서 나온 말이고, ‘오직 식만 있음’을
과 같도다.[吾觀一滴水 八萬四千蟲 若不念此呪 如食衆生肉]” 자각종색(慈
覺宗賾, 1009~1092) 선사의 『선원청규』(1103)에 “물 한 방울을 보니 팔만 가리키는 유식 (唯識)은 인도불교의 전통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천이 중생이 있다. 범부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천안이라야 보인다.[吾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전통에서 오랜 기간
觀一滴水 八萬四千生 凡夫目不見 天眼自分明]”(X63-555b)는 게송을 전하
고 있으며,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는 ‘관수주(觀水呪)’ 을 두고 정립된 이들 두 개념은 그 성격이 매우 이질적이라고
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정식게와 한 글자가 다른 게송을 전하고 있다. “吾觀 볼 수도 있지만, 연수 선사가 보기에는 분명한 공통점을 갖는
一滴水 八萬四千蟲 若不誦此呪 如食衆生肉”
다. 그 점을 한번 살펴보자.
12) “물 한 방울”
최원섭 _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의 불교 주제 중국철학에 나타난 ‘자신을 돌이킴[反己]’
구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원과 금강대학교 인문한국연구센 중국의 고전(古典) 가운데 하나인 『중용(中庸)』에는 다음과
터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외래강사. 대중문화를 통해 불교를 전하는 일에 관심
을 두고 있다. 같은 구절이 나온다.
● 고경 2017. 02. 42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