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7년 2월호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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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것들이 다 없다는 말이냐?’는   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로 인해 사람들은 도리어 세계의 실상

 거부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의 말
 이런 반박들에 대처하기에 앞서 유식학자들은 자신들이   을 사용한다는 것은 늘 그것에 대응하는 실체가 우리의 정신
 세운 개념들의 함의를 정확히 기술하고자 노력한다. ‘식만 있  과 독립해서 저 바깥에 존재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가정 (假
 고 경계는 없다’는 말에서 ‘식 (識)’은 인간의 정신 활동 혹은 경  定)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우리들의 생생한 경험을 절대 부  이러한 가정 혹은 집착을 체계적으로 강화시킬 경우, 석가
 정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직접적인 지각과 경험이야말  모니 부처님께서 그토록 비판하셨던 인도의 아트만(Atman)
 로 세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場)임을 강조한다. 다음으로 유  의 철학이 펼쳐진다. 이들은 인간의 무상한 육신 속에 불멸
 식학자들이 비판하는 ‘경계 [境]’란, ‘말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  의 아트만이 내재해 있고, 더 나아가 이 아트만은 세계를 창

 으로, 그들은 ‘말의 대상’이 고스란히 이 세계에 실재한다는   조한 브라흐만(Brahman)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라는 관점
 견해를 집중 비판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은 매우 어렵게   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들이 일상에서 사용하
 들릴 수 있으므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는 ‘말’의 기능과 작동원리 등을 근본적으로 반성해보지 않은
 가령 아라비아 숫자 ‘1’이라는 말에 대응하는 것이 이 세상  채, ‘나’라는 말에 대응하는 대상이 몸속에 있다고 무의식적
 에 실재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  으로 가정하고 있음을 비판하셨다.

 까?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는 하나의 사과, 하나의 귤, 하나  유식학자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러한 견해를 계승하여
 의 계란 등과 같이 무수한 ‘하나’가 있지만, ‘1’에 의해 지시되  ‘말에 대응하는 대상들로 구성된 세계’는 오히려 허구이고 추
 는 ‘하나’ 그것은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또 다른 경우를 한   상적인 존재인 반면, 인간의 정신과 더불어 나타나는 세계 [緣
 가지 들어보자. 우리는 늘 ‘나의 연필’, ‘나의 휴대폰’, ‘나의 손  起]야말로 진정한 실재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처럼 인도 불
 가락’, ‘나의 마음’과 같은 말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과  교의 유식학은 매우 정교한 인식론(認識論)과 언어에 대한 통
 연 ‘나’라는 말에 대응하는 ‘대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찰을 바탕으로 세계의 실상을 드러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유식학자들은, ‘말’이란 어떤 것들을 추상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사고 능력과 다른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무  자신을 돌이키는 것으로 으뜸을 삼는다
 수한 개별자들을 숫자 ‘1’로 추상화시키고, 다양한 행위가 귀  유식학이 인간의 ‘말’과 그 말이 불러일으키는 환영(幻影)의
 결되는 주체로서 ‘나’를 상정한다. 이런 추상화의 능력은 인간  정체를 해명하는 데 주력했다면, 중국 철학의 ‘자신을 돌이킴
 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더없이 큰 공헌을 하였지만, 유식학  [反己]’이라는 개념은 자신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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