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7년 2월호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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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지 않으면 불안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책이  다시 삼성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재용의 영장이 기각되

 나 집어 들고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노신전집』이다. 아무래  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공든 탑이 무너져버린 느낌을 받았
 도 직업병 탓인지 탑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띈다.  다. 문제가 많아 보여도,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력과 민주주의
 중국 항주 서호에 오월왕 전씨가 975년에 세운 탑이 하나   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쌓은 탑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서 있었다. 뇌봉산에 서 있기 때문에 뇌봉탑이라 불렸는데, 맑  죽어라 일해서 터를 닦아놓은 기단에, 청계천 오빠가 몸에 불
 은 호수와 푸른 산 사이로 지는 해가 하도 아름다워서 ‘뇌봉  을 붙이고 방직공장 언니들이 똥물 맞아가면서 쌓아올린 탑

 낙조’라 하여 서호 10경에 꼽히는 명승이었다. 그런데 차츰차  이다. 그런데 이 탑에서 벽돌을 한 장씩, 두 장씩, 또는 몇 장
 츰 기울어가던 탑이 1924년 9월 25일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  씩 빼가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그럴 자격이 있
 고, 이 소식을 들은 노신은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다  다고 생각한다. 아니, 원래 자기네 것이라고 여긴다.

 시 한 번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라는 두 편의 글을 썼다.   그래서 그런지 청문회를 보면 뻔뻔한 거짓말을 하면서 아
 탑이 무너진 이유는 사람들의 미신 때문이었다. 뇌봉탑 벽돌  무 가책도 없어 보인다. 여러 분야에 걸쳐 어찌나 꼼꼼하게 훔
 을 한 장만 집에 가져다 놓으면 집안이 편안하고 소원을 성취  쳐 먹었는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하며 그 어떤 흉액도 길상으로 변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  도둑질에 정부기관과 기업과 언론과 사법부가 심부름을 해주
 서 사람들이 거기 구경 갔다가 한 장씩 몰래 가져갔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다 보니 날이 가고 달이 가
 서 결국 무너졌다고 한다.
 노신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개개인의 무지와 이기심을 탓

 하는 한편, 백성의 고혈을 짜서 만든 탑이 무너진 데 고소함
 을 느낀다고 신랄한 평을 붙였다. 불교신자로서 나는 노신의
 이 말이 편치만은 않다. 절과 탑과 불상을 통해 불법이 전해
 지고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탑을 세울 당시에도
 혹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내걸고 측근들과 해먹을 것 해먹

 으면서 백성의 고혈을 짜지나 않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겠
 다는 생각이 든다.



 ● 고경  2017. 02.                                            58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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