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7년 2월호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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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다물어. 가방끈이라도 있잖아.” 한다. 그러면 하려던 이야기가

                                                                               쏙 들어간다. 그녀들에 비하면, 기울어진 운동장 위쪽에서 출
         무너진 탑을                                                                발한 죄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세우는 마음으로                                                             어젯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다 원고 걱
                                                                               정까지 더해져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그런 중에 가장 분통터
                                                                               지는 건 삼성 이재용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일이다. 사람들이
         글 : 이인혜
                                                                               돈 때문에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또 ‘김영란법’으로
                                                                               3만원에 벌벌 떨게 된 마당에 4백억을 뇌물로 주고도 풀려나
                                                                               다니, 무슨 일이 이렇게 돌아가나. 복잡한 법리를 들먹일 것도

                                                                               없이 보통사람의 상식에 뻔한 일을, 법원은 대체 무슨 생각으
                                                                               로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인지. 청와대, 높으신 공직자들, 언론인
           아침에 눈을 뜨니 창 밖으로 간밤에 내린 눈이 두껍게 시                                     들, 어느 하나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낱낱이 드러난 가운데,
         야에 들어왔다. 새해부터 착하게 살기로 한 바, 아름다운 서                                     이번 판결은 법원도 예외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정시 한 편을 떠올리려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한참 만에 떠                                       법관이 이런 판결을 내리는 것은 재벌이 주는 장학금을 받

         오른 건 멋대가리 없는 훈계조의 시 한 수뿐이다.                                           고 공부하여 법관이 되었기 때문이고, 퇴직하면 재벌과 관련
           “눈 쌓인 밤길을 갈 때는 비틀비틀 걷지 마라. 지금 네 발자                                  된 로펌에 취직을 해야 누리던 것을 계속 누릴 수 있기 때문
         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일 것이다. 결국 돈 때문이다, 돈 돈 도온….

           젊은 날에 이 시에 감동받고, ‘그래 똑바로 살아야해.’ 하면                                    밤새 자다 깨다 하면서 이런저런 잡생각에 겨우 잡아놓았
         서 마음을 다져먹은 것이 아마 각인이 되었나 보다. 이렇게 착                                    던 원고 주제가 다 날아가 버렸다. 해가 바뀌어 나이도 한 살
         하게 살아온 공덕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사는 게 갈수록 힘들                                    더 먹었으니 이제는 좀 점잖고 예쁘게 ‘보시’나 ‘절 수행’에 대
         다. 나만 힘든 건 아니고 주위를 돌아보면 친구나 지인들, 그                                    해서 써 볼까 했었는데 머릿속이 눈처럼 온통 하얗다. 한 줄
         들의 자녀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이라도 시작을 해놔야 생각을 이어갈 텐데 점 하나 찍지 못하

         게을리 살아온 것도 아닌데, 노~오력을 해도 별로 나아지지                                      고 금쪽같은 오전을 날렸다. 숙제 스트레스에 눌려본 사람은
         않는다. 친구들 만나서 어렵다는 말을 할라치면 “너는 그 입                                     알겠지만, 이럴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가 더 어렵다. 뭐라



         ● 고경                                           2017. 02.                                                                56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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