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7년 3월호 Vol.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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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지만 나와 타인은 둘이 아니라는 것이 공사상이다. 따라서 마음이 생기게 된다.
공의 지혜를 체득한 사람이 취하는 첫 번째 태도는 자신은 뒤
로 숨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상대방을 전면에 드러나게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사라짐
하는 것이다. 공의 세 번째 의미는 자기와 남이 함께 존재하는 ‘자타구존
인식이 여기에 이르게 되면 굳이 자신이 드러나야 하고, 내 (自他俱存)’이다. 남을 먼저 드러나게 하고, 남이 잘 되면 결국
가 먼저 득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은 내가 드러난다. 따라서 내가 숨는다고 해도 내가 사라지는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 먼저’의 마음을 내려놓 것도 아니며 소외되는 것도 아니다. 남이 드러난다고 해서 남
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내가 그런 생각을 내려놓으 만 잘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게도 돌아온다. 그래서 법
면 갈등과 경쟁도 완화된다. 상대방도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가 장은 드러남과 숨음이 둘이 아니라고 했다[隱顯無二].
먼저이고자 하는 인식과 행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공을 인식 드러남과 숨는 것이 둘이 아니므로 색[남]이 드러나는 것이
하고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곧 공[나]이 드러나는 것이 된다. 남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나와 남이 다르고 남이 먼저 드러나면 내가 손해를 본다. 되는 것이며, 내가 잘 되는 것이 남이 잘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지만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면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이렇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남을 드러나게 해 주는 것이
게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공의 두 번째 지 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남을 먼저 드러나
혜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즉 먼저 드러나 있던 남이 뒤로 숨 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와 남이 함께 드러나기 위한 전제가
고, 이번에는 내가 전면으로 부상하는 ‘민타현기 (泯他顯己)’가 바로 남을 먼저 배려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空]를 숨기고 남[色]을 먼저 드러 렇게 할 때 나와 남이 함께 존재하는 공존과 상생의 삶이 열
나게 했다. 하지만 공과 색이 다르지 않음으로 색이 드러나면 린다.
결과적으로 공이 드러나게 된다. 공의 네 번째 의미는 너와 내가 함께 사라지는 ‘자타구민 (自
결국 공사상은 색과 공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 (不二)를 통 他俱泯)’이다. 사실은 너도 나도 모두 연기적 관계에 있는 존재
해 나와 남이라는 인식을 해체한다. 색과 공이 둘이 아님으로 들일 뿐 실체가 없다. 실상에서 보면 너도 없고 나도 없다. 사
색이 완전하게 드러날 때 공도 저절로 드러난다[色盡空顯]. 남 라짐이 곧 드러남이므로 내가 사라져 남을 드러나게 하고, 남
을 잘 되게 하면 나도 저절로 잘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이 사라져 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공의 네 번째 의미다. 서
갖게 될 때 타자에 대한 배려의 행동이 나올 수 있고, 공존의 로가 함께 드러남은 자기실현의 관점에서 본 것이고, 서로가
● 고경 2017. 03. 32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