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고경 - 2017년 3월호 Vol.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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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며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론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큰스님께서 하루는 소납을 찾으시더니 “그 책이 뭣이 어렵

 때는 해인사 법당에서의 법문에 그치시고 큰스님의 말씀을   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그러나 어렵다고들 하니 『선문정로』
 책으로 출판하지 못하다가 1981년 12월 15일 『선문정로』가   를 평석할 교수를 한번 찾아 봐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동국
 출판됨으로써 학계에 큰스님의 ‘돈오돈수사상’이 공식적으로   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불교학 교수로 있던 신현숙 교수를 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게 되었고, 큰스님께 여쭈었더니 “한 번 만나 보자.”고 허락하
 1981년 『선문정로』의 제1장 견성성불(見性成佛)에서 돈오돈  셨습니다. 연락을 드려 신 교수님께서 백련암으로 큰스님을

 수를 정의하시면서 1967년 ‘백일법문’에서는 보이지 않던 영  찾아뵙게 되었고, 2시간 가까이 비교적 긴 시간 대화를 나누
 명연수 선사의 『종경록』 ‘표종장’에서 인용하여 돈오돈수를   고 배웅 차 해인사까지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펼쳐 보이시는 것이 뚜렷한 차이점으로 드러납니다. 그 설명  되었습니다. 신 교수님이 묻고 제가 대답하는 식이었습니다.

 에서 법문하신 종경록 100권을 회당조심 선사가 3권으로 만  “큰스님은 어느 대학 나오셨습니까?”
 들어 『명추회요(冥樞會要)』라고 이름하여 세상에 널리 유통되  “큰스님께서는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
 었다고 하였는데 지난 2015년 7월에 장경각에서 번역·출간하  는 일제강점기 때 보통학교 6년 졸업한 것하고 서당에서 『자
 였습니다. 『선문정로』가 세상에 빛을 보이자 불교계 안에서도   치통감』을 배우다가 한문 문리에 통달하신 후 누구에게도 무
 당혹스러워하고 또 책 내용이 어렵다는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엇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지금 당신께서 아는 불교는

          29세 때 팔공산 동화사 금당에서 깨치신 후 모두 독학으로
          공부하였지 누구한테 배운 적이 없다 하십니다.”
            “그러면 지금 대화 중에 엄청난 독서량과 불교학설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혼자 공부하신 결과란 말입니까? 대학에 다니
          신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예! 큰스님 말씀으로는 전부 혼자서 공부하신 것이지 누
          구의 지도도 받으신 적이 없다 하셨습니다.”
            “그럼 요사이 일본의 큰 학자들의 학설도 말씀하시는데 그

 『선문정로』와 『본지풍광』  것도 독학이란 말씀입니까?”
            “성전암에서 10년 동구불출하고 계실 때 현대의 불교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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