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17년 3월호 Vol.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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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불교서적을 읽으셨다고 합니다.”
신 교수님도 큰스님께서 가지신 불교이론과 지식에 대해
서 꽤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신 교수님을 전송하고 큰스님을
뵈오니 큰스님께서도 별말씀 없으시니, 제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쯤 신 교수님이 한국불교학회에서
『선문정로』에 대해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
교수님의 발표에 대해서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론을 옹호하는
제1세대 학자들의 공세와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산골의 선사인 성철이 감히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를 무지막
지하게 비판하다니 가당치 않다.”는 기세등등함은 저를 아연
실색케 하였습니다.
1981~2년에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을 받아 드신 성철 큰
스님은 “이 두 권의 책을 내었으니 나는 이제 부처님께 밥값
성철 스님 법문 모습
다했다. 이 책들을 제대로 터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나
를 바로 아는 사람인 것이다.”고 흡족해 하셨는데, 『선문정로』
의 출판으로 인하여 그 유명한 ‘돈점논쟁’으로 불교학계는 용 심더.” 누워서 묵묵히 듣고 계시던 큰스님이 벌떡 윗몸을 일으
광로처럼 들끓게 되었고 보조학계의 성철 큰스님에 대한 질 키시더니, 제 왼쪽 뺨을 오른쪽 손바닥으로 철썩 때리시면서
타는 끝 모르게 이어졌습니다. 고함을 치셨습니다. “니 지금 인재양성이라캤나? 이놈아! 나
학회를 마치고 백련암으로 돌아와서 저녁마다 안마를 해드 는 평생 인재양성이 뭔지 모르고 살았는 줄 아나? 이놈 봐라,
리는 시간에 큰스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국불교학회에 키울 인재가 없는데 나보고 우짜란 말이고! 뭘 좀 해보자카마
가 보니 모두가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를 연구하는 교수들뿐입 다 못 견디고 도망가고 없는데, 내가 우짜란 말이고, 너거들이
니더. 해인사 골짜기에서 큰스님 혼자서 선종 전통사상은 돈 라도 내 뜻을 알아 좀 똑똑히 살아줘야지, 다 머저리 곰새끼
오돈수라고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심더. 큰스님 사상 들만 우글거리니 나도 별수 없지!” 그리고는 또 한 차례 뺨을
을 뒷받침할 인재를 키우셔야지, 이러다간 나중에 큰일 나겠 치셨는데 여전히 분이 사그라지지 않은 모습이셨습니다.
● 고경 2017. 03.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