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고경 - 2017년 6월호 Vol.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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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런 관계의 맥락을 이해하면 무수한 관계가 만나는                                      된다. 이처럼 색과 공이 모두 긍정되는 것을 천태학에서는 ‘쌍

         교차점에 색, 즉 무수한 존재들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이처                                    조(雙照)’라고 했다. 대립되는 두 명제가 모두 드러나고 전체가
         럼 존재의 근원을 밝혀보면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진                                     긍정되기 때문이다.
         공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눈앞에는 무수한 관계적 맥                                       넷째는 민절무기관(泯絶無寄觀)이다. 모든 것이 끊어져 붙을
         락으로 얽혀 있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                                    때가 없다는 뜻이다. 공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색은 실체가 없
         공(明空)’ 즉 공의 의미를 밝혀보면 눈앞에 펼쳐진 무수한 존                                    음으로 색이 부정된다. 반대로 색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

         재들이 곧 공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는 천차만별의 존재들이 펼쳐져 있음으로 공이 부정된다. 공
                                                                               의 관점에서 보면 색이 사라지고, 색의 관점에서 보면 공이
           색과 공의 중도                                                            사라진다. 따라서 공의 실체성은 색에 의해 부정되고, 색의 실

           셋째는 색공무애관(色空無礙觀)이다. 색과 공이 걸림 없이                                     체성은 공에 의해 부정된다. 이를 천태학에서는 ‘쌍차(雙遮)’라
         서로 소통한다는 뜻이다. 앞서 색을 바로 이해하면 공으로 돌                                     고 했다. 대립되는 두 명제 [二諦]인 색과 공이 모두 사라져서
         아가고, 공을 밝혀보면 공이 곧 색임을 알게 된다고 했다. 색                                    전체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은 공으로 전환되고, 공은 색으로 전환된다. 이는 색과 공이                                       이상과 같이 진공의 네 가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있
         겉보기에는 상호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이 둘은 서로 분리된                                       다[色]’거나 ‘없다[空]’는 범주를 넘어서 있다. 그리고 존재의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개별적 존재인                                     이와 같은 특성을 ‘쌍현쌍민 (雙現雙泯)’, ‘구존구민(俱存俱泯)’,
         색은 모두 공이라는 관계적 맥락 속에 있다. 또 모든 개별적                                     ‘쌍차쌍조(雙遮雙照)’로 표현된다. 색과 공이 동시에 모두 긍정
         존재의 이면에 숨어 있는 관계적 맥락인 공은 무수한 색을 통                                     되지만 또 색과 공이 함께 부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다운

         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공, 즉 진공은 존재의 중도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지 진공관처
           따라서 색과 공의 관계는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므                                    럼 어떤 물질도 없는 텅 빈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로 색과 공은 ‘둘이 아님’ 즉 ‘불이 (不二)’로 귀결된다. 대립하는
         두 명제가 걸림 없이 상호 소통하고 전환된다는 것이다. 따라
         서 존재는 개별적 실체가 없음으로 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
                                                                               서재영    _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
         무 것도 없는 텅 빈 공도 아니다. 그러면서 또한 색은 색대로                                    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존재하고, 공은 또 공대로 존재함으로 색과 공은 모두 긍정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 고경                                           2017. 06.                                                                3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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