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7년 6월호 Vol.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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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다시 보기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공이라는 한문의 표기는 같지
만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
진공관(眞空觀)의 공에 대해 ‘물질이 전혀 없는 완전히 텅 빔’으로만 이해하는
네 가지 의미 것은 진공을 절반만 이해하는 변견 (邊見)이며, 공의 의미를 왜
곡하는 안목이다.
공(空)의 의미에 대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글 : 서재영
관점을 ‘단멸공(斷滅空)’ 또는 ‘악취공(惡取空)’이라고 부른다.
단멸공이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악취공은
공의 의미를 나쁘게 이해했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그 무엇
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악취공에 빠지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것을 이렇게 생
진공관의 두 가지 의미 각하면 당연히 선행을 행할 필요도 없고, 열심히 살아갈 필
지난 호에서는 법계삼관의 개요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호 요도 없다. 그 결과 도덕이 무너지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에는 법계삼관 중에서 공(空)에 대한 바른 안목을 밝히고 있 것은 자명하다.
는 ‘진공관(眞空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법계삼관에서 말하는 진공관이란 오디오 앰프에 쓰
법계를 바라보는 첫 번째 안목은 ‘모든 것은 공하다’는 진공 이는 진공관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빔을 의미하지
관이다. 흔히 진공관이라고 하면 속이 텅 빈 ‘진공관(眞空管)’ 않는다. 성철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의 바른 의미를 설
을 떠올리기 쉽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眞空)’ 역시 같은 한 명하기 위해 『화엄법계현경 (華嚴法界玄鏡)』의 내용을 인용한다.
문으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화엄법계현경』은 청량국사 징관이 쓴 주석서로 ‘화엄법계의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진공관의 ‘진공[vacuum]’이란 ‘물질이 깊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징관은 진
전혀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법계삼 공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설명한다. 즉 ‘회색
관에서 말하는 진공관 역시 물질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비물 귀공관’, ‘명공즉색관’, ‘색공무애관’, ‘민절무기관’이다. 징관이
질의 상태이자 절대 무(無)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불교 말하는 진공의 네 가지 의미를 음미해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에서 말하는 진공에 대해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진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고경 2017. 06.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