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17년 6월호 Vol.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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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것인가에 대하여 설일체유부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명에 따르면, 사띠는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것(abhilapati)”, 즉,

 설일체유부는 사띠를 인지 대상을 현재의 순간으로 ‘환기  관찰해온 것을 그대로 환기하고, 기록하고, 지적하고, 기억하
 하며’ (abhilapati) 그래서 그 대상들을 나중에 기억될 수 있는   기까지 한다. 이처럼 세친에게 사띠는 이해를 통해 우리가 본
 조건들 중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유식학에  것을 붙잡는 수단이고,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지각된 것을 마
 서 사띠는 과거에 파악한 의식의 대상을 ‘환기하는 것’이다.   음에 간직하게 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해 사띠는 ‘익숙한 대상을 놓치지 않는 것’, ‘반복적으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부파불교 시대에 불교교리가 체계화

 로 기억하는 것’으로, 한번 대상이 마음에 알려지면 그 순간  되면서 사띠 개념도 체계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사띠의 의미
 부터 사띠는 반복적으로 그것을 마음으로 ‘환기하며’ 마음이   가 현존하는 마음의 상태에 대한 주의뿐 아니라 불교에서 권
 다른 의식의 대상에 의해 산만해지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한다.   장하는 기억 대상에 대한 기억으로 확장되면서 의식 전반에

 세친의 사띠 해석이 과거의 대상과 연관된 것에는 중요한   서 일어나는 심소인지 특정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심소인지에
 근거가 있다. 그는 사띠를 이해 (prajna)의 한 형식으로 보았는  대한 논쟁과 선심소인가 불선심소인가라는 논쟁이 일어났다.
 데, 경전들에서 염처 수행을 ‘관찰’ (anupasyana)의 한 형식이라  이러한 논의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과정
 고 기술하고 있듯이 사띠는 사물의 여실함에 대한 관찰이나   이었을 뿐 아니라 수행법에서도 대승불교 수행법으로, 나아
 통찰, 또는 이해의 형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관찰을 할 때   가 선불교 수행으로 전환되는 거대한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이

 사띠가 행하는 역할에 대한 세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첫  아닌가 생각된다.
 째, 사띠는 마음에 현전하여 관찰된 것은 무엇이든 붙잡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뒤에 이해가 작동할 수 있다. 둘

 째, 이해는 그 대상이 실제로 어떤지 관찰하며, 그때 사띠는
 그것을 ‘환기하는(abhilapana)’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사띠
 는 이해를 통해 자신을 적용시킨다. 그러므로 사띠의 적용은   명법 스님  _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마치고 10년간 강사로서 학인을 지도했다. 경전 연찬을 하는 틈틈이 제
 이해이다. 왜냐하면 [사띠는] 사물을 [이해를 통해] 본 그대로 환  방에서 정진했으며, 서울대와 동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과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미학, 명
          상, 불교를 강의해오고 있다. 2016년 미르문화원을 열고 그곳에서 은유와마음연구소를 맡
 기하기 때문이다.”  아 운영한다. 새로운 형식의 불교모임인 무빙템플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이 밖에도 (사)
 첫 번째 설명에 따르면 사띠는 단단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와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은유와 마
          음』, 『미술관에 간 붓다』,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등이 있으며, 「무지한 스승으로서
 현재 의식의 대상을 붙드는 작용만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설  의 선사」, 「『선문염송』의 글쓰기-정통과 민족적 정체성의 지향」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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