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7년 11월호 Vol.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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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밥이 다 된 줄 안다. 따라서 밥 하느라 수고할 필요가 없 임신 출산 양육 장례
다. 그곳에는 각종 나무가 자라는데 나무에서 갖가지 생필품 마음껏 즐기고 난 결과 임신을 하게 되면 이레나 여드레 만
이 열린다. 옷 나무, 그릇 나무, 장신구 나무, 과일 나무, 악기 에 몸을 푼다. 낳은 것이 아들이건 딸이건 네 거리 교차로에
나무, 향 나무 등이 줄지어 있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껍질 놓아두고 가버린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가락을 내
이 터지면서 필요한 물건들이 나온다. 물건이 필요하면 사람 어 빨게 하는데 달콤한 젖이 나와서 아이의 몸에 들어간다.
들은 나무 밑에 가서 선다. 나무가 몸을 굽혀 가지를 내려주 이레만 지나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 그곳 사람들은 전
면 향을 따서 몸에 바르고 옷을 따서 입고 장신구를 따서 단 생에 열 가지 선업을 쌓았기 때문에 긴 수명을 누린다. 1000
장하고 그릇을 따서 과일을 담고 악기를 따서 연주하면서 마 살을 살다가 목숨을 마치는데, 죽었다고 우는 사람이 없다.
음껏 논다. 하루, 이틀, 이레를 논 다음 정처 없이 떠난다. 강 주검을 손질해서 네 거리에 놓고 가버리면 새가 와서 다른 곳
에 들어가 놀 때는 먼저 강기슭에 옷을 벗어두고 보배로 된 으로 가져갈 뿐이다.
배를 타고 강 복판에 가서 물에 들어가 헤엄치며 논다. 물에
서 나와서는 자기 옷을 찾지 않고 아무 옷이나 입는다. 네 옷, 이렇게 소개해놓고 보니 북울단월에는 없는 게 많을 것 같
내 옷 따로 없이 먼저 나온 사람이 먼저 입고 뒤에 나온 사람 다. 의식주가 자동 해결되면 내 것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으
이 뒤에 입을 뿐이다. 므로 우선 소유욕이 없을 것이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뿐만 아
니다. 언제든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즐길 수 있으니 사
성생활 람에 대한 집착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기가 수월하고 아이
음욕이 일어나면 마음에 드는 상대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 키우는 일을 여자한테만 떠맡기지 않으니 산후우울증이 없을
보고 숲으로 들어간다. 눈이 맞은 상대가 숲으로 따라 들어간 것이다. 긴 육아 때문에 생기는 경력단절도 없을 것이다. 쉽게
다.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부모뻘 되는 혈육이어서 관계를 가져 태어난 아이들은, 염부제 사람 기준으로 보면, 낳아준 부모의
서는 안 될 사이라면 나무가 몸을 굽혀 가려주지 않는다. 그 고마움도 모르는 ㅎㄹ자식이 될 테지만 애초에 효도를 바라
러면 흩어져 제 갈 길로 간다. 관계를 가져도 무방한 사이라 는 부모가 없을 것이다. 결혼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는 것
면 나무가 몸을 굽혀 가려준다. 그러면 하루, 이틀, 혹은 이레 으로 보아 결혼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소유욕과 집착이
까지 마음껏 즐기고 나서 흩어진다. 없으니 자연히 그럴 법하다. 또한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누가
그 구속을 일부러 선택하겠는가.
● 고경 2017. 11. 56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