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7년 12월호 Vol.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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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모든 존재들이 서로의 경 딪치면서 포말을 일으키는 하얀 파도와 망망대해에 출렁이는
계를 허물고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고, 전체와의 넘나듦 속에 검푸른 바닷물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워낸다. 각자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지 하지만 그것은 작용에 따라 표면적으로 나타난 일시적 모
만 흙이 국화가 되고, 물이 국화가 되고, 햇살이 국화가 되고, 습일 뿐 본질에서 보면 파도의 성분도 물이고, 바다의 성분도
바람이 국화가 된다. 이것이 ‘상즉(相卽)’이다. 물이다. 이렇게 본질을 추구해 들어가면 대해는 파도의 하얀
이처럼 모든 존재를 본체의 관점에서 보면 상즉, 내가 곧 네 포말이라는 개별적 차이를 박탈하고, 하얀 파도는 검푸른 바
가 되고, 네가 곧 내가 되는 관계 속에 있다. 흙, 물, 햇살, 바람 다라는 특성을 빼앗아 버린다. 겉으로 드러나는 작용은 다르
이라는 사대가 인연을 만나서 하나로 모이면 국화가 되고, 그 지만 본체의 관점에서 보면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물이 파도
인연이 흩어지면 흙, 물, 햇살, 바람이 된다. 제법상즉자재문의 의 특성을 빼앗고, 파도가 바닷물의 특성을 빼앗는 것을 ‘호
요점은 이렇게 모든 존재들이 자유롭게 상호 전환되는 것에 상형탈(互相形脫)’이라고 한다. 파도는 물이라는 배타적 형상
초점이 모아져 있다. 을 빼앗고, 물도 파도라는 고립적 형상을 빼앗기 때문이다.
화엄의 눈으로 보면 나는 너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너도 개별적 존재는 개체의 경계를 해체할 때 전체와 하나가 된
나를 완전히 받아들인다. 나와 너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다. 국화는 국화라는 개별자에 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들어가는 ‘상입 (相入)’의 관계에 있다. 경계를 해체하면 1단지 의 관계 속에 있다. 그런 이치를 깨닫게 될 때 국화라는 개체
와 2단지 주민을 모두 받아들이고, 1단지 주민은 2단지로 들 적 특징은 박탈되고 만다. 이렇게 서로 고립된 존재성, 허구적
어가고, 2단지 주민도 1단지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이렇 인식의 울타리를 허물어버리고 본질적으로 존재가 상호 소통
게 서로에게 들어가면 [相入] 그들은 둘이 아니라 같은 단지 주 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 ‘호상형탈’이다.
민이라는 하나가 된다. 호상형탈은 네가 나의 존재를 파괴하고, 내가 너의 존재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나 스스로 있다’라는
바닷물과 하얀 물거품 ‘나’라는 고립적 개체성, 허구적 인식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
제법상즉자재문은 모든 존재가 상입하여 내가 곧 네가 되 다. 네가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다. 너 역시 나의 참여와 기
고, 네가 곧 내가 되는 상호 전환의 자유로움을 설명하고 있 여로 존재한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빼앗는 것은 서
다. 이런 소통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비유가 바닷물과 파 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존재한다는 ‘연기 (緣起)’의 또 다른 표
도의 관계이다. 외형적 조건으로만 보면 철썩하고 바위에 부 현이다.
● 고경 2017. 12.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