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17년 12월호 Vol.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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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례를 보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다.                                  생각으로 빚어진 경계에 불과한 것이다. 경계가 만들어지면

         인간이라는 주체는 사유하는 능력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삶이 시작된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
         다. 주체가 성립되면 그 대상이 되는 객체가 생겨나고, 그 둘                                    있는 경계를 허물고 ‘서로가 서로의 경계 안으로 들어감[相入]’
         을 가르는 경계가 생겨난다. 이렇게 보면 나와 남을 구분 짓는                                    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전체성을 회복할 수 있고, 더불어 살아
         경계는 아파트 단지의 담벼락같이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가는 공존의 삶이 가능해진다.
         다. 주체와 객체는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사유에 의해 만들어                                       자의적으로 형성된 생각의 경계를 깨는 것이 『금강경』에서

         진 허구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무상(無相)’이다. 각자가 가진 ‘나’라는 ‘상(相)’을 깰 때
           이처럼 인간이 임의로 만든 마음의 경계를 불교에서는 ‘아                                     나는 너의 경계 속으로 들어가고, 너는 나의 경계 속으로 들
         상(我相)’이라고 한다. 사유하는 힘으로 확립된 주체는 사실                                     어오게 된다. 경계가 분명하면 주객의 대립이 생성되지만 경

                                                                               계가 해체되면 모두가 하나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
                                                                               (we)’가 된다. 우리는 개별적 경계를 해체하고 ‘거대한 하나의
                                                                               우리 (cage) 속에 사는 존재’들인 셈이다.


                                                                                 상호 전환의 자유로움

                                                                                 화엄의 십현문은 존재의 실상으로 들어가는 깊은 문[玄門]
                                                                               이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존재의 실상은 무수한 경계들로 구
                                                                               획 지어진 고립과 개별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모든 존재가 하

                                                                               나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성의 세계다. 그렇게 경계를 넘어 나
                                                                               와 너가 자유롭게 상호 소통하는 이치를 설명한 것이 네 번째
                                                                               문인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이다.
                                                                                 여기서 ‘상즉(相卽)’이란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라는
                                                                               뜻이다. 따라서 나와 너의 관계가 서로의 경계에 갇혀 있는 것

                                                                               이 아니라 상호 전환됨이 자유자재함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흙, 빗물, 햇살, 바람이라는 사대 (四大)는 각자 서로 특성이 분



         ● 고경                                           2017. 12.                                                                2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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