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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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밥을 해야 하는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  을까?’이다.”
 는 얼마나 관찰하고 사유했을까. 쇠털같이 많은 날들을 밥하
 는 데 종사한 사람의 자격으로 말한다면, 앞에서 말한 평등  하루에 설거지를 한 번 이상 하면 그날 인생이 억울한 사람

 은 제한된 평등이다. 도를 닦는 그룹에서 남자 스승이 남자 제  으로서,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 옛날 인도
 자에게 해주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수다원이건 아라한이  에서 나신 것이 나에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동네

 건, 내 눈엔 밥 안 해도 되는 게 제일 부럽다. 삼시세끼 먹고 치  에서 나셨더라면 걸식을 나오셨을 테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
 우기. 이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을 테고, 그때마다 불편했을 것이다.

 평화학자 정희진의 말을 들어보자.
                   “죄송합니다, 부처님. 남편이 밥 달랄까봐 겁나서 결혼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세상 그 누가, 이 권력을 포기하겠는  못했거든요.”
 가. 식사준비의 번거로움, 귀찮음, 먹는 사람의 평가, 남은 음

 식과 치우기 걱정은커녕 아예 그런 발상 자체와 무관한 삶.   이제는 밥을 안 해 먹고 산 지 벌써 몇 년 되었다. 집에는 냉
 누가 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권리와 ‘마음의 평화’, 자유를 포  장고가 없다.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가사노동에 쓰는 시

 기하겠는가.”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교양인, 2014)   간이 두 달에 한 시간쯤 되려나. 남는 시간에 멍을 때리든 독립
               운동을 하든, 그건 온전히 내 시간이다. 이렇게 놓여나고 보니

 이 책에서 저자는 로잘린드 마일스가 쓴 『최후의 만찬은 누  해탈이 따로 없다. 세상 누구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가 차렸을까?』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을 자유가 누

               구에게나 있다면, 그곳을 평등한 세상이라 하겠다. 자유와 평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  등. 이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지 않은가.

 렸을까? 만일 남자 요리사였다면 열광하는 추종자를 거느
 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겼지 않았을까’였  이인혜
               —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 편집위
 다. …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설거지는 누가 했  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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