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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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 때는
이것저것 보느라 홀리지 말지니
탐낼 만한 것들에 무심하다면
집착할 일 없어져 해탈하리라
마을에 들어서면 조용히 서서
집집마다 차례대로 밥을 빌어라
다닐 때는 실없이 웃지 말고 요한 수행법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이런 말씀들을
남에게 말을 걸 땐 예의를 갖춰라 나에게도 적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보다는 걸식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밥을 받는 사
발우를 들고서 밥을 빌러 다닐 때는 람이 아니라 밥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밥
말솜씨가 좋더라도 입을 다물라 을 받는 사람들이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였기에, 마음을 예쁘
받은 밥이 적다고 불만을 품지 말고 게 가지려고 애를 써봤다. 그분들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는 건
밥을 베푼 사람에게 욕하지 마라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세뇌를 시켜보기도 했고, ‘피
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고 나를 다독여
밥을 얻었다면 최고로 좋겠지만 보기도 했다. 그러나 허사였고, 하는 내내 불행했다. 하기 싫은
얻지 못했어도 성을 내진 말아라 건 하기 싫은 거니까. 생각하기 전에 몸이 벌써 아는 일이다.
양편에 똑같이 평등한 마음으로 그래서 경을 읽을 때 도를 닦는 스님들에게 감정이입이 되기보
나무 밑에 가져와서 편히 먹어라 다는 밥을 지었을 여자들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별 말씀 없으시다.
밥에서도 평등, 법에서도 평등. 이래서 불교가 참 멋있다. 그 모든 경에서 부처님이 매번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
러나 이렇게 훌륭한 법문에도 내 마음은 불편하다. 걸식이 중 이 있다. ‘관찰’과 ‘사유’, 잘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하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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