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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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하되 아직 시주를 하지 못한 자에게 복 지을 기회를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깨끗한 이든 더러운 이든 관계치 않고 계급이 높
밥에서 평등, 든 낮든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을 하고자 했으니, 평등한 자
법에서 평등 비를 행하려는 뜻이었다. 그 전에 아난은, 수보리와 가섭이 걸
식 때문에 부처님께 혼이 난 일을 알고 있었다. 두 분은 무려
아라한과를 얻은 성인들이다. 그런데 수보리는 부잣집만 골라
글│이인혜 서 걸식을 했고 가섭은 가난한 집만 골라서 걸식을 했다. 수보
리는 가난한 사람의 형편을 생각해서 그리 했고, 가섭은 가난
한 사람일수록 복을 지어줘야겠다는 마음에서 그리 한 것이
○●○ 다. 모두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었으나 부처님은 그러지 말라고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도 경을 읽는 것으로 나무라셨다. 나무라신 말씀이 ‘무차(無遮)’, 가리지 말고 평등하
밥을 먹고 살았다. 실은, 그전에 2년 동안 『능엄경』에 푹 빠져 게 밥을 빌어먹으라는 말씀이다. 가난한 집만 가면 위선을 떠
있던 터라, 새로 맡은 일로 이런저런 경을 보는 중에도 『능엄 느라 그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고, 부잣집만 가면
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친구 맛난 음식만 찾는다는 비방을 살 수 있다. 부처님은 두 제자를
들과 『능엄경』을 다시 읽게 되었고 이제 첫 부분을 지났다. 이 꾸짖어 평등심을 유지시키는 한편, 의심과 비방을 동시에 막아
경은 아난이 특별초청을 받고 나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길에 주셨다. 아난은 대선배님들이 이렇게 혼나는 것을 보고, 부처
여자한테 홀리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왕의 님의 가르침대로 평등자비를 시행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
초청을 받아 궁에 들어가서 대접을 받는 동안, 아난만 따로 나 이다. 그가 밥을 빌러 다니던 모습을 그려본다면 아마 이렇지
갔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경에 따르면, 그의 평등심이 문제의 않았을까 한다. 『불본행집경 (佛本行集經)』 38권에서 부처님이
발단이었다고 한다. 가전연에게 걸식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게송이다. 너무 길어서
중간 중간 생략하고 옮겨본다.
아난은 바리때를 들고 마을을 지나 돌아오는 길에, 걸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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