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18년 2월호 Vol.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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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들만 선별하는 경향을 보이므로, 앞의 세 가지는 생략하고   들기도 한다. 단지 세속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열심히 사는 것

 네 번째의 ‘이치 그대로의 마음’만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  은, 위에 나온 삼장의 가르침에 비춰 보면 이치를 등지고 사는
 면 구나발타 삼장이 말씀하신 네 번째 경우를 『명추회요』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를 떠나 따로 고요한 열반을 구

 인용(765쪽)을 통해 살펴보자.   하는 것 역시 그릇이 작은 성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 조금 더 나아가 현실 속에서 이치를 발견한 보살의 경우도

 이치 그대로 마음이란 것은, 마음이 이치를 벗어나지 않  복잡하고 어려운 삶 속에서 많이 시달리다 보면 그런 자각에
 고 이치가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니, 마음이 그대로 이치이  괴리감이 생길 수도 있다. 즉 이치 따로 나 따로의 삶이 될 수

 고 이치가 그대로 마음이라는 것이다. 마음과 이치가 평등  있는 것이다.
 한 것을 이치라 하고, 이치로 비추어 밝힐 수 있는 것을 마  그럴 때 구나발타 삼장은 네 번째 경우를 제시하는 것 같다.

 음이라 하며, 마음과 이치의 평등함을 깨달은 자를 부처라   즉 추구하는 이치 그대로가 바로 내 마음이 되어버려서 더 이
 한다. 마음이 진실한 성품에 부합한 사람은 생사와 열반에   상 따로 구할 것이 없는 그런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마음이 편

 차별이 있다고 보지 않으니, 범부와 성인이 차이가 없고 경  해졌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이 네
 계와 지혜가 하나이며, 이치와 현상이 함께 원융하고 진제와   번째 말씀은 노행자의 마음에 벼락같은 충격을 줬던 ‘머무는

 속제를 다같이 관조하여 원만하게 통하고 걸림이 없는 것을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는 『금강경』의 문구와 그 뜻이 곧장
 ‘대도(大道)를 닦는다’고 한다.   통하는 것 같다. 아마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능가사자기』와

               『육조단경』이라 해도, 업의 자취를 남기지 않으면서 걸림 없이
 앞서 소개한 안심 (安心)의 가르침 중 앞의 세 가지를 보지 않  사는 것을 최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는 것 같다.

 고 위의 문구만 본다면 그냥 좋은 말씀이려니 생각할 수도 있
 겠지만, 이 네 가지를 같이 놓고 보면 『명추회요』의 인용문이

 갖는 깊은 의미를 보다 수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박인석
 우리는 늘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와중에 열  —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
               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심히 살기도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혹은 길을 잘못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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