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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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보던 별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많이 익었다는 느낌이 든다. 달
밝은 밤은 나를 비추며 조용히 바라보는 것 같아 의지가 된다.
두 번째 칸을 지나 세 번째 마지막 칸인 ‘끌목칸’에 다다를 때 내 몸은
후들거려 제 정신이 아니지만 또 다른 담담함이 있다.
마침 새벽 3시 정도가 되면 개심사 위 보현선원의 불빛이 우리 집에서
도 환히 보인다. 도량석 소리가 내 마음속에 들리는 것 같다. 마음이 놓인
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씨름한지 12시간 …. 해탈
한 기분이 이런 걸까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스친다. 가마 안의 결과가 어
떻든 그건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잘 익었으면 감사하고 아니면 또 그
만한 이유가 있겠지. 불을 마감할 즈음 오히려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개
운해지는 것 같다.
불을 때는 것은 물론 방법도 중요하고 나름 노하우도 있겠지만, ‘직
감’이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단번에 깨우칠 수도 없는….
수많은 실패와 경험이 쌓여야 그나마 조금씩 다가오는 ‘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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