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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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성철 큰스님은 20세가 되기 전까지
사서삼경이나 제자백가의 책들과 서양철학 서적들을 두루 보셨지만 불
교는 접한 적은 없었습니다. 20세가 지난 후 비로서 불교에 관심을 가졌
고, 24세 후반에 지리산 대원사 탑전에서 스스로 화두를 들고 용맹 정진하
여 40여 일만에 동정일여의 경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참선수
행에 크게 환희심을 일으켜 25세인 1936년 해인사에서 동산혜일 큰스님을
만나 성철性徹이라는 법명을 받고 마침내 수행의 길로 매진하게 됩니다. 29
세 때인 1940년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존재의 실상을 깨치고 오도송
을 읊었습니다. 그 후에도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도심을 탁마 하였습니다.
1947년 가을 봉암사에서 “청정 독신과 계율정신을 으뜸으로 하여 부
처님 법대로 살자!”며 도반들과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고, 44세 되던
1955년 가을 파계사 성전암 주위에 철망을 두르고 “내가 세상을 가두고
산다.”며 10년 동안 동구불출 하셨습니다. 56세 되던 1967년 7월에 해인
사 해인총림 초대방장에 추대되시어 선종 전통수행의 기틀을 세웠습니
다. 70세인 1981년 1월에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되었습니다.
당시 큰스님은 “영원한 진리라고 하면 불교가 가장 수승한 것 같다.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앞으로라도 불교 이상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또 다시 진
리를 찾아 나서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이처럼 큰스님의 일생은 영원한 진리를 위해 초연히 고독한 발걸음
을 옮긴 생애였습니다. 큰스님의 “마음이 부처다. 내 마음을 깨쳐야 한
다.”는 당부의 말씀을 철칙으로 삼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동시에 원명
스님의 못다한 원력을 이루기 위해 모스크바 달마사 사부대중들이 부처
님 지혜의 눈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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