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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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이제 몇 년 만 더 오면 30년이 된다니 고

            맙고 고마운 일입니다.”며 덕담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인연이 깊은 적명
            수좌 스님이 떠나셨다니 10여 년 동안 찾아뵈었던 신도님들의 마음이 텅

            비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9년 12월26일 초하루 법문을 마치고 부산에서 14:00시 KTX를 타

            고 15시15분 김천·구미역에 도착, 마중 나온 일운 스님이 운전하는 승
            용차를 타고 봉암사에 가니 16시30분경이 되었습니다. 빈소로 안내되어

            단위에 안치되어 있는 진영을 대하니 울컥하는 마음에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텅 빔’이 밀려 왔습니다. 삼배를 드리고, 살아있음의 의미가 무엇

            인지에 대해 곱씹고 곱씹었습니다. 선원의 여러 스님들과 소임 스님들을
            만나 뵈오니, 수좌 스님의 원적에 낙심하는 모습에  말을 더 보탤 수가 없

            었습니다. 봉암사 주지 스님은 “오일장을 치르며 49재는 매주 월요일마
            다 올린다.”고 했습니다.

              백련암에 돌아가 천진성 보살님에게 사정을 알려드렸습니다. “우리가
            봉암사 대중 스님을 위해 8일 수요일에 산중공양을 가려고 예정하고 있

            었습니다. 그런데 적명 수좌 스님의 2재가 6일 월요일이라 하니, 이틀을
            당겨 산중공양을 가서 재에 참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날

            보살님이 “회장 보살이 대중과 의논하니 다들 찬성한다고 합니다.”라는
            연락을 전화로 주었습니다. 6일 오전 7시쯤 출발하려니 소한小寒 추위에

            눈은 내리지 않고 가랑비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전날 법호륜 회장님에게
            “봉암사는 선원이라 준비가 잘 갖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신도님들이 국

            화꽃 한 송이라도 영전에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해 갔으면 합니다.”고 말씀
            드렸더니 “벌써 버스 3대가 준비되었습니다. 내일 이곳저곳에서 신도들

            이 문상하러 온다니 국화꽃 150송이를 준비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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