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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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 절대 또는 최고의 지혜의
                                                힘인 진실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밀교에서

                                                는 마음의 번뇌를 없애주는 상
                                                징적인 의미로 수용되었고 수
            사진 5. 네메아 산의 사자를 죽이는 헬라클레스, 간다      행법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라(1세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금강저에 대한 불교 경전의

                                                기록으로는 중국 오나라의 지
                                                겸 스님이 3세기 경에 번역한
                                                 『수마제녀경』에 처음으로 밀적

                                                역사의 지물로 등장한다. 서진

                                                시대에 번역된 『법구비유경』에
                                                서는 불을 켜는 발화發火의 용
                                                구로 금강저가 기록되어 있으

                                                며, 법현 스님의 인도 구법 순

            사진 6. 보리수 아래로 향하는 부처님께 길상초를 바치      례기인 『불국기』와 현장 스님의
            는 솟띠야, 간다라(1-2세기), 페샤와르박물관.
                                                『대당서역기』에도 나타나고 있
            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한 금강저

            의 형태는 중간 부분이 잘룩하게 좁혀진 손잡이로 되어 있고 양 끝은 창

            끝처럼 길게 돌출되어 있다. 그러나 고대 인도나 간다라에서 제석천이나
            금강역사의 지물로 등장하는 금강저의 형태는 우리나라의 것과는 다르게
            위아래가 넓고 가운데가 좁은 형태를 하고 경우가 많다(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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