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P. 75
적 금강으로 여겨진다.
나한전과 명부전의 조선시대 금강 역사상
조선시대 금강 역사상은 나한전과 명부전에도 봉안되었다. 여러 존상
이 배치된 나한전과 명부전의
문 입구 모셔진 금강 역사상을
조선시대 불교도들은 장군상將
軍像이라고 불렀다(사진 6). 명부
전 존상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는 한결같이 장군상으로 기록
하고 있기 때문에 금강문에 모
셔진 상은 ‘금강 역사상’으로,
나한전과 명부전에 모셔진 존
상은 ‘장군상’으로 불러야 할 것
이다.
금강 역사와 장군상의 명칭
혼동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글에
서도 찾을 수 있다. 조선후기 유
장원(1724-1796)이 편찬한 『상변
통고』에 의하면 “칼로 저미고 불
로 태우며 절구로 찧고 맷돌로
가는 형벌이 있으니, 염라대왕
사진 5. 완주 송광사 금강문의 금강 역사상과 보현 보
은 후세의 형관刑官이고 금강 역 살상(위), 금강 역사상과 문수 보살상(가운데), 금강문(아래).
73